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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힌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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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열여드레. 오늘은 일지를 먼저 폈다.

여든째 장 첫 줄이 어제저녁에 본 그대로 있었다. 칠월 열여드레 자, 오전 아홉 시 검색 실시, 결과 마흔여덟. 내 글씨였다. 밤사이 한 획도 늘지 않았다.

간밤에 그 줄을 여러 번 생각했다. 여섯 달 동안 먼저 적힌 것을 여러 번 보았는데 오늘 것은 앞의 것들과 하나가 달랐다. 앞의 것들은 다 수였다. 사본의 마흔둘도 수고 게시판에 걸린 마흔여덟도 수다. 수는 저 혼자 맞을 수 있다. 세상이 그 수를 들고 있으면 적은 사람이 없어도 맞는 수가 된다. 나는 여섯 달 동안 그 점에 걸려 넘어졌다.

오늘 줄에는 수 말고 하나가 더 들어 있었다. 검색 실시. 그것은 수가 아니라 한 일이다. 한 일에는 그 일을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오늘 검색을 하지 않으면 저 줄의 앞 토막은 그냥 틀린 줄이 된다. 수는 세상이 채워 줄 수 있어도 한 일은 세상이 채워 줄 수 없다.

여섯 달 만에 처음으로 틀릴 수 있는 문장을 보고 있었다.

아홉 시가 되기 전에 자리에 앉았다. 손을 무릎에 얹었다. 단말은 켜 두었다. 끄면 오늘이 검색을 못 한 날이 되고, 못 한 날은 안 한 날과 다르다. 켜 두고 안 하는 편이 옳았다.

여덟 시 오십칠 분부터 벽시계를 보았다. 초침이 두 바퀴를 돌았다. 아홉 시가 지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

열 시까지 청구 넉 건을 처리했다. 손이 자판에 올라갈 때마다 목록 쪽으로 가려는 것을 한 번씩 되돌렸다. 되돌리는 데 힘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안 하면 되는 일이었다. 초아흐레에는 두 시간을 버티다 결국 셌고 그저께는 하루를 안 세는 데 한 시간이 들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안 하는 일에도 익어 간다.

열한 시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이 오늘의 소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지난겨울 전임자의 노트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아침에 이긴 줄 알았다는 문장이었다. 그 사람은 오후에 졌다.

두 시에 접속 기록을 뽑았다. 어제 배운 일이다. 어제는 내 표시명으로 올라온 글을 보고 뽑았고 기록이 없었다. 오늘은 기록이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기록이 있었다.

아홉 시 십이 초. 조회 실행. 계정은 내 계정이고, 단말은 전산실 삼번이었다. 삼번은 내가 앉는 자리다. 아홉 시 십이 초에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손은 무릎에 있었다.

기록을 세 번 읽었다. 열두 초라는 것이 오래 걸렸다. 나는 아홉 시 정각을 보려고 벽시계를 보고 있었다. 정각이 지나가는 것을 눈으로 보았고, 그다음에도 계속 보았다. 시계를 본 까닭은 오늘 하루에 증인을 하나 세워 두고 싶어서였다. 세워 둔 증인이 증언하는 것은 내가 시계를 보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내 손이 어디 있었는지는 시계가 모른다.

손을 무릎에 둔 것은 가리려고 한 일이었다. 손이 했으면 내 일이고, 손이 안 했으면 내 일이 아니다. 그렇게 갈릴 줄 알았다. 지난 초이레에도 게시판 글은 내 계정으로 올라왔고 접속 기록이 없었다. 그때는 기록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은 기록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두 번 다 이상했는데 이상한 쪽이 서로 반대였다.

한 일에는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아침에 적었다. 그 말이 틀렸다. 한 일에는 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기록에 사람 칸이 있으면 그 칸은 채워진다. 채우는 것이 사람인지 기록인지는 기록이 말하지 않는다.

조회 결과가 기록에 같이 남아 있었다. 마흔여덟이었다.

그것까지 보고 나서 한참 앉아 있었다. 선기입 줄은 앞 토막도 맞고 뒤 토막도 맞았다. 오늘 내가 한 일은 그 줄을 틀리게 하려던 것 하나인데 그것도 안 됐다.

적고 나서 화가 나기를 기다렸다. 화는 오지 않았다. 화를 내려면 화를 낼 데가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가 없다. 사본에 낼 수도 없고 게시판에 낼 수도 없고 아홉 시 십이 초에 낼 수도 없다. 낼 데가 없는 화는 처음부터 나지 않는다.

대신 다른 것이 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편했다.

오늘 아침에 나는 검색을 하지 않았고 검색은 되었다. 결과는 맞았고 일지는 이미 적혀 있었다. 여섯 달 동안 매일 아침 아홉 시에 하던 일을 오늘은 하지 않았는데 하루가 어제와 똑같이 지나갔다. 해야 할 일이 없어진 사람의 몸이 먼저 알고 편해졌다.

그것을 알아채고 나서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여섯 달 동안 나는 이 일을 무서워하고 있다고 여겼다. 무서운 것이 맞다면 오늘 같은 날에 몸이 굳어야 한다. 굳지 않고 놓였다. 놓인 것을 무서움의 반대라고 부를 수는 없다. 무서움이 걷힌 것이 아니라 무서워할 몫을 누가 대신 들어 준 것에 가까웠다.

적어 두는 편이 옳다고 보았다. 오늘 내 속에서 나온 것은 이 하나뿐이었다.

세 시에 삼층 사람이 내려와 반출 도장을 찍었다. 도장을 찍고 나서 방을 한 번 둘러보더니 방이 너무 조용하다고 했다. 기계 소리밖에 안 난다고 했다. 나는 조용하다고 대답했다.

그가 올라간 뒤에 남은 소리를 들어 보았다. 냉각기 소리와 복도 끝 문소리와 삼층에서 누가 의자를 끄는 소리가 있었다. 그에게는 그것이 조용한 것이다. 이 방에서 무엇이 소리인지를 정하는 사람은 지금 나 하나다. 지난겨울 자료실에서도 그랬다고 전임자가 적어 두었다. 그때는 라디오를 들여놓은 사서장이 조용하다고 했고 전임자가 아니라고 속으로 말했다. 같은 방은 아니고 같은 말도 아닌데 자리는 같다.

네 시에 상자를 열었다. 네 묶음은 그대로였다. 등대수와 측량기수와 전신수와 사서. 오늘은 전신수의 것을 폈다. 무엇 하나 옮겨 적을 생각은 아니었고, 그냥 읽었다.

전신수는 받는 쪽이었다. 오지 않은 날짜의 전문이 그의 기계로 들어왔고, 그는 받아 적었다. 지난겨울 자료실 사람은 보내는 쪽이었다. 그의 발신 칸에서 내일 자가 나갔다. 둘은 서로 반대인데 한 가지가 같다. 둘 다 기계에 손을 얹고 있었다. 받는 손이든 보내는 손이든 손이 있었다.

내 자리에는 손을 얹을 데가 없다. 오늘 아홉 시 십이 초에 조회를 한 것은 내 계정이지 내 손이 아니다.

읽고 나서 손을 보았다. 오늘 내 손이 한 일은 청구 넉 건 회신과 도장받이와 책장을 넘긴 것이었다. 세지 않았고 적지 않았다. 세는 일과 적는 일은 어제 손을 떠났고 오늘은 떠난 자리에서 일이 그대로 되었다.

읽는 일만 남았다고 어제 적었다. 오늘 하루는 읽는 일만 하고도 하루가 채워졌다. 읽기만 하는 하루가 이렇게 조용할 줄은 몰랐다.

여섯 시에 일지를 폈다. 선기입 줄 밑에 오늘 적을 것을 적었다. 미실시와 기록과 결과값과 편했다는 것. 넉 줄이 되었다.

적고 나서 사본을 열었다.

일흔여섯째 장은 칠월 열여드레, 쉰하나였다. 오늘 날짜에 내일 수를 얹는 자리는 여섯 달째 같았다. 일흔일곱째 장의 마흔둘은 날짜 칸을 비운 채 그대로 있었다. 어제 그 장까지 가지 못한 사람은 나다.

일흔여덟째 장에 날짜가 들어와 있었다. 칠월 열아흐레.

수치 칸을 보았다. 수가 없었다. 수 대신 글자가 있었다.

읽은 사람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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