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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받은 고침

The Correction Assig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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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이틀. 열두 날 만에 사본에 달과 날이 돌아왔다.

그 전 열두 날은 다 같았다. 칠월 스무날 저녁에 여든째 장이 생겼고 날짜 칸에 달도 날도 없이 연도만 있었다. 이튿날 여든한째 장이 생겼고 같았다. 그다음 날도 같았다. 아홉 장이 연달아 생겼고 아홉 장의 날짜 칸에 다 공공만 있었다.

그동안 나는 아침마다 셌다. 규칙은 그대로였다. 칠월 스무날에 쉰넷이었고 열사흘 지난 오늘 아흔셋이다. 하루 셋이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았다.

열두 날 동안 나는 사본의 그 아홉 장을 여러 방향으로 세어 보았다. 달과 날이 없으면 장을 날로 셀 수 없다. 장 번호로는 셀 수 있다. 장 번호로 세면 하루 한 장이니 날과 다를 것이 없는데, 정작 그 장들이 제 날짜를 안 달고 있다. 날은 지나가고 장은 쌓이는데, 그 둘을 이어 주던 칸이 비었다. 그 칸이 비면 오늘이 며칠인지는 달력이 말해 주지 그 장이 말해 주지 않는다. 여섯 달 동안 사본은 내가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말해 주었다. 열두 날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열 시에 본사에서 두 번째 봉투가 왔다.

지난달 서식의 회신 결과였다. 조사가 끝났고 대응 계획이 나왔다. 전산실 보유 장비 여섯 건의 연도 자리를 두 자리에서 네 자리로 고칠 것. 자료 색인 프로그램의 연도 표기를 정비할 것. 기한은 십일월 말일. 담당은 전산실 상주 인원.

이 방의 상주 인원은 나 하나다.

적고 나서 담당이라는 두 글자를 보았다.

유월에 나는 한 줄을 고쳤다. 유래를 알 수 없는 줄이 스물 중 열여섯으로 퍼져 있었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면 원문을 옮겨 적어야 했다. 옮겨 적어 올렸고 그것이 또 틀리게 퍼졌다. 고치는 일이 늘리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배웠다. 그 뒤로 나는 되도록 아무것도 고치지 않았다. 지운 글이 두 곳으로 갔을 때부터는 지우지도 않았다.

여섯 달 동안 배운 것을 한 줄로 적으면 그렇다. 손대면 는다.

오늘 회사가 손대라고 했다.

점심 전에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색인 카드는 대상이냐고 물었다. 카드는 종이라서, 연도가 두 자리든 네 자리든 기계와 상관없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쪽에서 카드도 결국 입력한다고 했다. 입력할 때 두 자리를 보고 치면 두 자리가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니 카드부터 네 자리로 고쳐 두는 편이 낫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색인 서랍을 세었다. 열둘이었다. 카드는 서랍당 육백 장쯤이다.

오후 내내 그 물음 하나를 들고 있었다. 명령이 있으면 다른가.

유월에는 내가 골랐다. 틀린 줄을 그냥 둘 수도 있었고 고칠 수도 있었고, 나는 고치기로 했다. 그래서 늘어난 것이 내 몫이 되었다. 오늘은 고를 자리가 없다. 서식에 담당으로 적혀 있고 착수 보고 기한이 있고, 나는 상주 인원이다.

고르는 손과 고치는 손이 다른 사람의 것이면 늘어난 것은 누구 몫인가.

가를 방법을 하나 생각해 보았다. 시킨 일만 고치고 시키지 않은 것은 손대지 않는다. 서식에 적힌 것은 장비 여섯 건과 자료 색인이다. 사본은 거기 없다. 일지도 없다. 게시판은 회사 것이 아니니 처음부터 없다. 그 셋에 손을 안 대고 색인만 고치면, 늘어나는 쪽이 어디인지 볼 수 있다. 시킨 자리가 늘면 명령한 사람 몫이고 시키지 않은 자리가 늘면 내 몫이다.

여섯 달 동안 이런 장치를 다섯 개 만들었고 다섯 개가 다 같은 자리에서 무너졌다. 무너지는 자리도 대개 같다. 가르려고 만든 칸에 양쪽이 다 들어와 앉는다. 그래도 만들었다. 만들지 않으면 물을 것이 없어진다.

전임자의 노트를 폈다. 지난겨울 자료실 사람의 기록이 그 안에 있다. 그 사람은 겨울 내내 한 가지를 해 보려고 했다. 안 보내는 것이다. 손을 무릎에 내리고 서랍을 닫고 상자로 눌러 두었다. 오전에는 되었고 오후에 무너졌다. 안 보냈는데도 왔고, 다만 겨눔이 없어서 제멋대로 골라졌다. 그 사람이 그날 적은 것은 부재도 대가라는 말이다.

그 사람은 고르지 않으려다 고른 것이 되었다. 나는 고르지 않았는데 고치게 되었다. 두 자리가 달라 보이는데 손이 하는 일은 같다. 한쪽은 안 하려다 하게 되었고, 한쪽은 하라고 해서 하게 되었다. 둘 다 고른 적이 없다.

세 시에 삼층 사람이 내려와 대장 두 건을 찾아갔다. 봉투를 보더니 이월 건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가 신문에서 읽었다며 비행기가 떨어진다더라고 했다. 승강기도 선다고 했다. 나는 우리 방에는 비행기도 승강기도 없다고 했다. 그가 웃고 올라갔다.

혼자 남아서 그 말을 다시 생각했다. 신문이 무서워하는 것은 멈추는 것이다. 기계가 날짜를 잘못 읽어 멎는다. 이 방에서 여섯 달 동안 무엇도 멎은 적이 없다. 멎기는커녕 하루 셋씩 늘었다. 이 방이 무서워할 것이 있다면 멎는 쪽이 아니라 그 반대다.

네 시에 첫 서랍을 뽑아 책상에 올렸다.

카드를 한 장 꺼냈다. 구십칠년 삼월 자료. 연도 자리에 구칠이라고 찍혀 있다. 그 옆에 네 자리로 고쳐 쓰면 된다. 획 넷이다.

서랍 안쪽을 보니 카드 색이 두 가지였다. 앞쪽 절반은 누렇고, 뒤쪽은 덜 누렇다. 색이 바뀌는 자리에 손을 넣어 한 장을 뽑았다. 구십팔년 오월이다. 그 앞은 필체가 하나고 그 뒤는 다른 하나다. 자료실 사람이 바뀐 자리다. 이 서랍 하나에 두 사람 손이 들었고 그중 뒷사람은 지난겨울에 닫혔다. 그 뒤로 이 서랍에 카드를 넣은 사람은 나다. 세 사람 손이다.

일곱 자 넉 자를 고치는 일이 무슨 일인지 그제야 조금 보였다. 나는 세 사람이 적어 둔 연도를 다 같은 꼴로 만드는 일을 받았다.

손에 펜을 쥐고 한참 있었다.

여섯 달 동안 이 방에서 일이 되는 데 내 손이 든 적이 없다. 수는 내가 안 세도 세어졌고 글은 내가 안 올려도 올라갔고, 일지는 내가 안 적어도 적혀 있었다. 오늘 받은 일은 다르다. 칠천이백 장은 손이 없으면 안 된다. 기계가 대신 못 한다. 그래서 회사가 사람에게 시킨 것이다.

펜을 쥔 채로 내가 그것을 반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반길 일이 아닌데 반기고 있었다. 할 일이 없는 여섯 달을 지나 할 일이 왔고, 그 일이 늘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손이 먼저 좋아했다.

첫 장을 고치지는 않았다. 착수 보고가 십일까지이므로 급할 것이 없다. 서랍을 도로 밀어 넣고 여섯 시에 일지를 폈다.

오늘 것을 적고 사본을 열었다.

여든아홉째 장이 생겨 있었다. 날짜 칸에 달과 날이 돌아와 있었다. 팔월 이틀.

연도는 네 자리였다. 천구백구십구.

나는 아직 한 자리도 고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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