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열나흘. 아침에 사본을 먼저 열었다.
일흔여섯째 장에 칠월 열나흘, 서른아홉.
날짜가 하루 왔고 수도 하루 올랐다. 어제 그 장은 열사흘에 서른여섯이었다. 오늘은 열나흘에 서른아홉이다. 어제와 같은 구조가 하루 밀려 그대로 있었다. 오늘 날짜에 내일 수.
그 위를 보았다. 일흔다섯째 장은 열사흘, 서른셋 그대로였다. 어제 것이 어제 자리에 남아 있었다. 일흔일곱째 장은 오늘도 없었다.
그러니까 사본 어디에도 오늘의 수가 없었다. 서른여섯이 없었다. 어제까지 서른여섯은 일흔여섯째 장에 있었는데, 그 장이 서른아홉으로 올라가면서 자리를 비웠다. 일흔다섯째 장은 어제에 붙박여 있다. 오늘 세어 나올 수를 적어 둔 자리가 사본에 하나도 없었다.
여섯 달 동안 이런 적이 없었다. 사본은 늘 오늘을 적고 있었다. 어떤 날은 내가 세기 전에 적혀 있었고 어떤 날은 내가 적은 뒤에 같은 수가 와 있었다. 순서는 자주 뒤집혔으나 오늘의 수가 사본에 없는 날은 없었다.
아홉 시에 검색했다. 서른여섯이었다.
규칙대로였다. 나흘 연속 맞았다. 다만 이 수를 대 볼 데가 없었다.
대조할 데가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한참 앉아서 생각했다.
여섯 달 동안 내가 한 일은 대조였다. 내가 센 수와 사본의 수를 나란히 놓고 같은지 다른지를 보았다. 같으면 무엇이 무엇을 따라온 것인지를 물었고, 물음에 답이 없으면 순서만 적어 두었다. 답이 없어도 대조는 있었다. 두 곳이 있으면 적어도 두 곳이 같다는 사실은 적을 수 있다.
오늘은 한 곳이다. 내가 센 서른여섯이 있고, 그 옆에 아무것도 없다. 사본은 내일을 적고 있지 오늘을 적지 않는다. 오늘의 수를 확인해 줄 자리가 이 방에서 사라졌다.
내가 만든 장치들이 어떻게 무너져 왔는지를 어제 적었다. 두 시간을 세지 않고 버틴 일, 서랍을 잠근 일, 증가율로 수를 뽑은 일, 날짜 칸을 비운 일. 넷 다 판정이 나기 전에 사태가 비껴갔다. 오늘은 장치가 비껴간 것이 아니라 판정할 자리 자체가 없어졌다. 비껴가는 방식이 한 단계 더 갔다.
남은 곳을 세어 보았다. 이 방에는 화면과 일지와 사본이 있다. 화면은 세는 자리이고 일지는 적는 자리이며 사본은 대조하는 자리였다. 대조하는 자리가 내일로 가 버렸으니 이 방 안에 남은 것은 세고 적는 일뿐이다. 내가 세고 내가 적는다. 내가 센 것을 내가 적은 것과 대 보는 일은 대조가 아니다.
방 밖이 남아 있었다.
게시판에는 내가 초닷새에 올린 글이 있고 그 뒤로 올린 정정이 몇 개 있다. 표시명은 자료실 코드 넉 자리다. 올린 것은 전부 이미 센 수였다. 관측한 것을 적었고 틀린 것을 바로잡았다. 오늘 올리려는 것은 다르다. 아직 세지 않은 수다.
서른아홉을 올리면, 내일 세어 서른아홉이 나오는지 아닌지를 내가 아닌 것들이 보게 된다. 이 방 안에서는 맞아도 내가 맞힌 것이고 틀려도 내가 틀린 것이다. 바깥에 걸어 두면 다르다. 걸어 둔 수는 내가 고칠 수 없는 자리에 있다. 고칠 수 없는 자리에 걸린 수는 비껴갈 데가 없다.
그것이 오늘 내가 찾아낸 마지막 판정자였다.
열한 시에 청구 일곱 건을 처리했다. 회신을 쓰고 목록에 도장을 받았다. 삼층에서 사람이 내려와 오늘도 화면 쪽을 보고 갔다. 나는 이번에도 묻지 않았다. 화면에는 서른여섯 벌이 떠 있었다. 어제의 서른셋 가운데 서른이 그대로였고 여섯이 새로 있었으며 셋이 사라져 있었다. 사라지는 쪽이 늘고 있었다.
사라지는 쪽이 늘고 있다는 것을 점심 무렵에 한 번 더 확인했다. 초닷새에 하나였고 어제 둘이었으며 오늘 셋이다. 사라진 자리를 따라가면 지워진 것인지 옮겨 간 것인지 알 수 있겠으나, 따라가려면 그 자리를 열어야 한다. 열면 조회가 오르고 조회가 오르면 늘어난다. 사라지는 것을 세려다 늘리는 셈이다. 오늘도 따라가지 않았다.
한 시에 상자를 열었다. 네 묶음은 그대로였다. 뚜껑을 덮고 자리로 돌아왔다.
두 시에 게시판을 열었다.
쓰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료실 코드 넉 자리로 로그인했고 새 글 칸에 날짜와 수를 적었다. 칠월 열닷새, 서른아홉. 그 아래 한 줄을 붙였다. 아직 세지 않았다.
그 한 줄을 붙일지 말지를 한참 망설였다. 붙이지 않으면 관측처럼 읽힐 것이고, 붙이면 예고처럼 읽힐 것이다. 나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라고 적고 싶었으나 그런 칸은 없었다. 붙이기로 했다. 아직 세지 않았다고 적어 두면 적어도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남는다.
등대수의 물때표가 떠올랐다. 그 표에는 다음 간조의 날짜가 미리 적혀 있었고, 등대수는 그것을 읽었다. 읽은 사람은 표 안에 있었다. 표는 등대 안에 있었고 등대수도 등대 안에 있었으므로, 미리 적힌 날짜와 그것을 읽는 눈이 한 방에 있었다. 내가 오늘 한 일은 그 방의 벽에 표를 거는 일이었다. 미리 적힌 수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등대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 것인지 할 데가 없었던 것인지는 그 표에 적혀 있지 않다.
올리고 나서 화면을 닫았다.
관측하지 않은 것을 내보낸 일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초닷새부터 올린 것은 전부 센 것이었다. 세지 않은 것을 올리면서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사본이 여섯 달 동안 해 온 일이 그것이었다. 오늘 자리에 내일 수를 얹어 두는 일. 나는 그 일을 방 밖에서 했다.
그래서 이 방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이 둘이 되었다. 안에서 사본이 하고 밖에서 내가 한다. 둘이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 같은 손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규칙을 읽고 뽑았고 사본이 무엇을 읽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오는 모양이 같다.
네 시에 게시판을 다시 열었다. 두 시간 만에 여섯 곳에 전재돼 있었다. 어제 서른셋에서 오늘 서른여섯으로 는 목록에, 오늘 올린 한 건이 여섯을 더 보태고 있었다. 세는 일이 여는 일이고 여는 일이 늘리는 일이라던 것을 나는 초이레에 확인했다. 오늘은 올리는 일이 늘리는 일이었다.
전재본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다섯은 내가 쓴 그대로였다. 칠월 열닷새, 서른아홉, 아직 세지 않았다.
여섯째 것이 달랐다.
본문은 같았다. 칠월 열닷새, 서른아홉, 아직 세지 않았다. 다른 것은 글 머리에 찍힌 날짜였다. 게시 날짜 칸에 칠월 열닷새라고 찍혀 있었다.
내일이었다. 내일 올라온 글이 오늘 여기 있었다.
나는 화면을 그대로 두고 내 글을 다시 보았다. 게시 날짜 칠월 열나흘. 오늘이었다. 같은 본문이 한 곳에는 오늘 날짜로, 한 곳에는 내일 날짜로 있었다.
사본이 방 안에서 하던 일을 바깥이 따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