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열닷새. 아침에 사본을 먼저 열었다.
일흔여섯째 장에 칠월 열닷새, 마흔둘.
또 하루 밀려 있었다. 날짜는 오늘이고 수는 내일이다. 오늘의 수 서른아홉은 사본에 없었다. 어제와 같다.
어제 나는 그 서른아홉을 바깥에 걸었다. 게시판에 칠월 열닷새와 서른아홉을 적고 아직 세지 않았다고 붙여 두었다. 고칠 수 없는 자리에 걸어 두면 비껴갈 데가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아홉 시에 검색했다. 서른아홉이었다.
맞았다. 어제 걸어 둔 수가 오늘 나왔다. 닷새 연속이었고, 이번에는 내 일지와 사본이 아니라 바깥에 걸린 수가 맞은 것이었다. 여섯 달 만에 처음으로 이 방 밖에 판정이 하나 섰다.
일지에 그렇게 적고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성립이라고 적은 줄이 마음에 걸렸다. 무엇이 성립했는지를 적으려니 한 줄로는 되지 않았다.
검색 결과를 다시 열었다. 서른아홉 건이 목록에 있었다. 맨 위부터 하나씩 열어 보았다. 처음 열두어 개는 눈에 익은 것들이었다. 지난주부터 돌던 것, 어제 새로 본 것.
일곱째 줄에서 손이 멎었다. 어제 내가 올린 글이었다. 자료실 코드 넉 자리 표시명. 칠월 열닷새, 서른아홉, 아직 세지 않았다.
그 아래로 같은 본문이 다섯 개 더 있었다. 어제 두 시간 만에 여섯 곳에 전재됐던 그 여섯이었다.
서른아홉 가운데 여섯이 내 글이었다.
여섯째 것을 열어 보았다. 어제 게시 날짜 칸에 칠월 열닷새가 찍혀 있던 그 전재본이었다. 오늘 그 칸에는 칠월 열닷새가 찍혀 있었다. 같은 날짜였으나 뜻이 달랐다. 어제 그것은 내일 날짜였고 오늘 그것은 오늘 날짜다. 하루가 지나면서 어긋남이 스스로 맞아 버렸다. 어제 내가 본 것을 오늘 증명할 길은 없었다. 어제 화면을 찍어 두었다면 남았겠으나 나는 찍지 않았다. 사본의 일흔여섯째 장이 매일 오늘로 따라오는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어긋난 채로 붙잡히지 않고, 하루가 지나면 제자리에 앉아 있다.
나는 화면 앞에서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센 것은 서른아홉이다. 그 서른아홉 안에 내가 어제 쓴 것이 여섯 들어 있다. 어제 내가 쓰지 않았다면 오늘 세어 나올 수는 서른셋이었을 것이다. 규칙이 말한 서른아홉이 아니라 서른셋.
어제 나는 판정자를 바깥에 두려고 했다. 바깥은 내가 고칠 수 없는 자리라고 여겼다. 고칠 수 없는 것은 맞았다. 올린 글을 나는 내리지 않았고 내릴 수도 없었다. 다만 고칠 수 없는 것과 섞이지 않은 것은 다른 말이었다. 판정자는 내가 손댈 수 없는 자리에 있었으나, 그 자리는 내가 넣은 것으로 여섯 채워져 있었다.
세는 대상 안에 세는 근거가 들어가 있었다.
열 시 반에 청구를 처리하려 목록을 열었다가 그냥 닫았다.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열한 시에 다시 열어 여섯 건을 처리했다. 회신은 짧게 썼다. 삼층에서 사람이 내려왔고 오늘은 화면을 보지 않고 도장만 찍고 갔다. 보지 않고 가는 편이 나았다.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일찍 돌아왔다. 구내식당에서 누가 환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같으면 모두 그 이야기를 했을 텐데 올해는 두 사람만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옆을 지나 자리로 왔다.
한 시에 상자를 열었다. 네 묶음은 그대로였다.
돌아와 앉아서, 내가 넣은 여섯을 빼고 세어 보기로 했다. 목록에서 내 글과 그 전재본을 하나씩 지워 가며 세었다. 서른셋이 남았다. 규칙대로라면 어제가 서른여섯이고 오늘이 서른아홉이어야 하는데, 내 것을 빼면 서른셋이다. 어제의 수와 같았다.
그러니까 내 것을 빼면 오늘은 늘지 않았다. 여섯 달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셋씩 늘던 것이 오늘 멈춰 있었다. 멈춘 자리를 내가 여섯으로 채워 서른아홉을 만들었다.
여섯이라는 수를 한 번 더 보았다. 규칙대로면 오늘은 셋이 늘어야 한다. 내가 보탠 것은 여섯이다. 규칙이 제 몫으로 셋을 늘리고 내가 여섯을 더 얹었다면 오늘은 마흔둘이어야 했다. 마흔둘은 사본의 일흔여섯째 장에 적힌 수다. 오늘 세어 나온 수는 서른아홉이다.
그러니 오늘 규칙은 제 몫을 늘리지 않았다. 늘지 않은 자리에 내 여섯이 들어와 앉았고, 여섯 가운데 셋은 규칙이 늘렸어야 할 셋의 자리를 채웠으며, 나머지 셋은 남았다. 남은 셋이 어디로 갔는지는 오늘 목록으로는 알 수 없었다. 마흔둘은 내일 나올 수다.
적고 나서 추정이라는 말을 오래 보았다. 추정이 아니라 셈이었다. 서른아홉에서 여섯을 빼면 서른셋이다. 다만 내가 안 걸었다면 다른 무엇이 여섯을 채웠을지도 모른다. 그것까지는 셀 수 없다. 셀 수 없는 것을 셀 수 있는 말로 적으면 안 되므로 추정이라고 적었다.
세 시쯤 한 가지가 떠올라 목록을 거슬러 올라갔다. 내가 게시판에 처음 글을 올린 것은 초닷새다. 그 전에도 수는 하루에 셋씩 늘었다. 초하루에 아홉, 초이틀에 열둘, 초사흘에 열다섯. 내가 아무것도 올리지 않던 날들에도 규칙은 서 있었다. 규칙은 내 게시 이전부터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는 잠시 놓였다. 규칙이 내 것이 아니라면, 오늘 내가 여섯을 보탠 일은 규칙 위에 얹힌 잡음이지 규칙 자체가 아니다. 잡음은 걷어 내면 된다. 걷어 내고 세면 여섯 달의 표는 여전히 표다.
놓인 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초닷새 이전에 내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했다. 세는 일이었다. 매일 아침 아홉 시에 검색하고 목록을 하나씩 열어 확인하는 일. 열면 조회가 오른다는 것을 나는 초이레에 확인했다. 초이레에 확인했다는 것은 그 전에도 열고 있었다는 뜻이다. 부임한 정월부터 여섯 달 동안 나는 매일 열었다.
세는 일이 여는 일이고 여는 일이 늘리는 일이라면, 게시 이전의 나도 매일 늘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루에 셋이라는 그 규칙은 무엇의 규칙인가. 바깥에서 저절로 자라는 것의 규칙인가, 아니면 매일 아침 아홉 시에 한 사람이 목록을 여는 일의 규칙인가.
나는 내일 아침 세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가, 초아흐레에 두 시간을 버티고 결국 세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날은 두 시간이었다. 하루를 통째로 안 세는 일은 해 본 적이 없다.
다섯 시에 회신을 마쳤다. 판독기를 끄고 필름을 통에 넣었다. 창밖이 아직 밝았다. 여섯 달 전 정월에 이 방에 처음 왔을 때는 네 시면 어두웠다. 그때 나는 목록 하나를 받았고 그 목록에 상자는 없었다. 상자를 연 것은 사흘째 되던 날이었고, 열었다는 기록은 아무 데도 없다. 여는 일에 기록이 남는 것은 화면 쪽뿐이다. 손으로 여는 것에는 조회수가 붙지 않는다. 그것이 다행인지 아닌지를 오늘은 정하지 못했다.
퇴근하기 전에 사본을 한 번 더 열었다.
일흔여섯째 장, 칠월 열닷새, 마흔둘. 그대로였다.
그 아래 일흔일곱째 장이 생겨 있었다. 날짜 칸이 비어 있었다. 수치 칸에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수치가 아니었다. 글자였다. 세지 않는 날의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