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동안 나는 갱구 앞을 지날 때마다 손에 쥔 줄이 팽팽해지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것을 잊기 위해 나는 셈을 택했다. 다림줄을 내리고, 붉은 실을 헤아리고, 깊이를 적었다. 그러나 광무국 대장은 마흔두 길이라는 인쇄된 숫자를 품은 채 내 곁에 놓여 있었고, 나는 매일 그 숫자와 내 실측이 어긋나는 것을 보아야 했다. 나흘째 되던 날, 줄은 마흔여덟 길에서야 바닥에 닿았다.
그날, 나는 대장을 덮었다. 마른 삼줄로도, 새 무명실로도, 깊이는 매일 자랐다. 줄이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늘어난 것은 갱이었다. 더 깨끗한 표를 만들겠다고 스스로에게 일렀다 — 대장의 틀린 숫자가 아니라, 내가 잰 참 깊이를 적은 표를. 학자의 일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직무에 충실한 자의 일.
빈 종이에 날짜와 깊이를 옮겨 적었다. 사월 십일일 마흔세 길. 십이일 마흔다섯. 십삼일 마흔여섯. 십사일 마흔여덟. 숫자들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다만 자랐다. 나는 그 표를 권양기의 쇠틀 곁에 걸었다 — 독일제 명패의 라틴어 곁에.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거짓말하지 않는 그 숫자가 무엇을 향해 자라는지, 나흘 전 나는 묻고 답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다른 물음에 이르렀다. 파는 이가 없는데 갱이 깊어진다면, 그 깊이를 적는 일은 — 측량이 아니라, 무엇이 자라는지를 지켜보는 일이 아닌가.
갱구 곁 바위로 갔다. 앞선 측량기수들이 부임할 때마다 제가 잰 깊이를 정으로 새겨 둔, 그 오랜 표였다. 맨 위는 또렷하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비바람에 닳았다. 나는 등불을 가까이 대고, 그 줄들을 처음으로 끝까지 세었다.
스물█ 길스무 몇 길에서 시작해, 마흔 길을 넘어 내 차례에 이르기까지, 바위에는 열아홉 줄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줄들을 세고, 다시 셌다. 광무국 대장에 오른 이 갱의 역대 측량기수는 — 인계 서류를 떠올리는 한 — 아홉 사람이었다. 아홉 사람이 부임했는데, 바위에는 열아홉 줄이 있었다.
바위에 새겨진 줄: ██████.손끝으로 그 닳은 줄들을 더듬는 순간, 등골을 타고 갱 속의 냉기가 스쳤다. 나는 그 한기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 한 측량기수가 여러 해에 걸쳐 여러 줄을 새겼을 수도 있지 않은가, 부임할 때마다가 아니라 잴 때마다 새겼다면. 그러나 그렇다면 줄은 더 많아야 했다. 측량은 매일이었으므로. 열아홉이라는 수는, 아홉보다는 많고 매일보다는 적은, 어떤 다른 셈에 맞아떨어졌다. 부임한 사람 수가 아니라 — 올라오지 못한 사람 수를 더한 셈에.
나는 그 셈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끝까지 하면, 다음 줄이 누구의 것이 될지를 알게 될 것 같았으므로. 줄을 새기는 일은 부임의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마지막 표시다.그러나 나는 정을 들었다. 직무에 충실한 까닭이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일렀다. 앞선 이들이 그러했듯, 내가 잰 참 깊이를 바위에 남겨, 다음 측량기수가 대장의 틀린 숫자에 속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마흔여덟 길. 나는 닳은 열아홉 줄 아래, 스무 번째 자리에 정을 대었다.
四八 — 白정으로 첫 획을 쪼는 순간, 갱 아래 어딘가에서, 정을 내리치는 박자에 꼭 맞추어 무언가가 한 번 — 둔하게 — 울렸다. 내가 쪼면 울리고, 멈추면 그쳤다. 나는 손을 멈추었다. 울림도 그쳤다. 다시 쪼았다. 다시 울렸다. 갱은 내 정에 응답하고 있었다 — 마치, 제 표에 한 줄이 더해지기를 오래 기다려 온 것처럼.
문장은 거기서 끊겨 있다. 나흘 전과 같이. 나는 마지막 획을 끝맺지 못했다. 정을 쥔 손이 멈추었고, 그 멈춤을 갱이 알아챘으므로.
이 글을 쓰는 지금, 광무국 대장은 덮여 있고, 내가 그린 새 표가 쇠틀 곁에 걸려 있다. 바위에는 스무 번째 줄이 새겨졌다. 마지막 획만이, 아직 끝맺어지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