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내보낸 적 없는 파일

The File I Never Sent

  • 3,582자
  • ~11분

오월 초엿새. 홍보실에서 전화가 왔다.

외부에서 문의가 들어왔다고 했다. 어느 잡지사 기자가 전화를 걸어, 이 회사에 예순 해 전 등대 일지가 있다는데 취재가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홍보실 사람은 그런 자료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나는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기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통신에서 봤다고 하더라고 했다.

오후에 통신에 접속해 보았다. 전산실에는 외부 접속용 회선이 한 대 있다. 자료 내려받을 일이 있을 때 쓰는 것인데 평소에는 잘 안 쓴다.

동호회 게시판에서 그 글을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목이 「60년 전 등대지기 일지 (스캔본)」이었다. 올린 날짜는 사월 스무이레였다.

본문은 짧았다. 회사에서 옛 자료를 정리하다 나온 것인데 읽어 보니 재미있어서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회사 이름은 없었다. 파일은 첨부되어 있었다.

조회 수가 사천이백이 넘었다. 사내보 팔백 부의 다섯 배가 넘는 수였고, 우리 회사 사람은 그 가운데 얼마 안 될 것이었다.

답글이 예순여덟 개였다.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금방 짐작이 갔다. 사내보를 보고 조회한 열아홉 부서 가운데 하나일 것이고, 게시글 말투가 젊었다. 확인하려면 조회 기록과 게시자 아이디를 맞춰 보면 되는데 그건 내 권한이 아니고, 확인해서 무엇을 하겠는지도 모르겠다.

총무부에 먼저 알렸다. 담당자는 사내보에 실린 자료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면서도, 일단 규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나는 답글을 처음부터 읽었다. 대부분은 짧았다. 잘 봤다, 옛날 글씨가 멋있다, 이런 게 어디서 나왔느냐, 하는 것이었다. 몇은 물때 이야기를 자기가 아는 지식과 견주어 길게 썼다.

열댓 개째에 한 사람이 문장을 하나 인용했다. 이 대목이 좋더라면서 한 줄을 그대로 옮겨 적어 두었다.

나는 그 문장을 몰랐다.

파일을 열어 검색했다. 없었다. 대조표도 확인했다. 파일에만 있는 열한 줄 가운데도 없었다.

답글을 단 사람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통신에서 남에게 쪽지를 보내려면 나도 아이디가 있어야 하고, 회사 회선으로 개인 아이디를 만드는 것은 규정에 걸린다. 답글에 그 문장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냥 좋아서 옮겼다는 투였다.

게시글에 첨부된 파일을 내려받았다. 우리 파일과 크기가 달랐다. 열어 보니 면수는 같았고 화질이 조금 낮았다. 올리면서 용량을 줄인 모양이었다.

그 문장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있었다.

우리 파일에는 없고 저 파일에는 있다.

두 파일을 나란히 띄우고 그 면을 함께 보았다. 위쪽은 똑같았다. 글씨도 같고 얼룩도 같았다. 우리 파일에서 그 자리는 다음 줄로 넘어가는데 저쪽은 한 줄이 더 있었다.

같은 자료의 사본인데 다르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시각으로 알 수 있다. 우리 것이 먼저다. 사월 스무이레에 올라간 것은 우리 것에서 나온 사본이다. 사본이 원본보다 한 줄 많다.

지난달까지 나는 종이와 파일을 견주었다. 이제 파일과 파일을 견주게 되었다.

규정을 확인했다. 그 자료는 대외비가 아니다. 개인정보도 없다. 사내 공유 색인에 있는 것을 직원이 개인적으로 내려받아 외부에 올린 것이므로 절차상 문제는 있지만, 징계 사안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총무부 의견이었다. 삭제 요청은 할 수 있다고 했다.

삭제 요청을 하면 게시글은 지워진다. 첨부 파일도 지워진다. 조회 수 사천이백 가운데 몇이 내려받았는지는 알 수 없고, 내려받은 것은 지울 수 없다.

이 문장을 나는 오래 들여다보았다. 지울 수 있는 것과 지울 수 없는 것의 경계가 어디인지가 명확했다. 서버에 있는 것은 지운다. 사람 손에 간 것은 못 지운다. 그리고 사람 손에 간 것이 몇인지는 세는 부서가 없다.

삭제 요청은 하기로 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요청 사유란에 무엇을 적을지가 또 문제였다. 대외비도 아니고 개인정보도 없는 자료를 왜 내리느냐고 물으면 답할 말이 없다. 나는 회사 자료의 무단 외부 게시라고 적었다. 그것이 사실이고, 사실 가운데 적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다.

요청을 넣고 나서 나는 오후 내내 다른 생각을 했다.

내가 이 일에서 한 것은 무엇인가.

스캔했다. 등록했다. 목록에 자료실 기록이라고 적었다. 사내보 인용에 동의했다. 그것이 전부다. 나는 아무것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예순 해 전 등대 일지가 통신 게시판에 있고 사천 명이 보았고 잡지사가 취재를 문의한다.

여덟 단계를 적어 둔 종이가 서랍에 있었다. 얹는다, 누른다, 저장한다, 등록된다, 색인된다, 검색된다, 청구된다, 복사된다. 그 뒤에 두 단계가 더 붙었다. 올려진다, 퍼진다. 열 단계가 되었고 내 손이 닿는 것은 여전히 앞의 셋이다.

앞의 셋을 안 했으면 뒤의 일곱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맞다.

그러나 앞의 셋은 내 일이었다. 자료실에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다 스캔 대상이라고 전산실이 말했고 나는 그 지시를 따랐다. 안 했으면 지시 불이행이다.

퍼뜨려서 늘어난 것인지, 늘어날 것을 내가 퍼뜨린 것인지를 나는 가릴 수 없다. 가릴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벗겨 주지도 않는다. 이 문장을 나는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잡지사 취재는 홍보실에서 거절하기로 했다. 사내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려면 결재가 여러 단계라 그 정도 꼭지에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그 결정에 안도했다가, 안도한 나 자신을 이상하게 여겼다.

거절한다고 게시판의 것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잡지에 안 실릴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차이가 오늘 아침까지는 큰 차이라고 생각했다가 오후가 되어 작은 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잡지는 몇만 부고 통신 게시판은 조회 사천이다. 다만 잡지는 한 번 나가면 끝이고 게시판은 계속 는다.

퇴근 전에 서랍을 열어 대조표를 꺼냈다.

열한 줄이 적힌 종이 옆에, 오늘 통신에서 본 문장을 하나 더 적었다.

열두 줄이 되었다.

적어 놓고 보니 열두 번째 줄은 앞의 열한 줄이 끝난 자리 뒤에 붙었다. 문장이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문장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도로 서랍에 넣고 잠갔다. 잠그는 것이 무슨 소용인지는 지난달에 이미 알았고, 오늘은 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앞자리 사람이 잡지를 보고 있었다. 우리 회사와 아무 상관 없는 잡지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이 넘기는 면을 눈으로 좇았다. 좇으면서,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알았다.

찾을 리가 없다. 아직은.

댓글

  •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남겨보세요.

댓글을 쓰려면 로그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