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초이레. 대조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이 밀려서 삼월 내내 미뤄 두었던 일이다. 사내보 건 뒤로 옛 일지 관련 문의가 계속 들어왔고, 문의가 들어올 때마다 나는 파일을 열어 답했다. 답하면서 한 번씩 원본과 다른 데가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사월 첫 주에 청구가 줄었다. 사내보가 나간 지 한 달이 되니 문의도 잦아들었다. 그때 시작했다.
방법은 단순했다. 파일을 한 면씩 화면에 띄우고 원본을 그 옆에 펴 놓고 줄 수를 센다. 줄 수가 같으면 넘어가고 다르면 어느 줄이 다른지 적는다. 다섯 묶음 육백여 면을 그렇게 보려면 며칠 걸린다. 나는 하루에 한 시간씩 하기로 했다.
닷새째까지는 아무것도 안 나왔다. 줄 수가 다른 면이 몇 있었는데 다 내 실수였다. 접힌 자국을 줄로 세거나 위쪽 여백에 찍힌 손가락 끝을 줄로 세거나 하는 것이다. 대조는 지루하고, 지루한 일은 실수가 앞선다.
여드레째에 등대 일지 백열두 면이 나왔다. 이미 아는 자리였다. 그다음부터는 자주 나왔다.
사월 스무날에 육백열다섯 면을 다 보았다.
파일에만 있는 줄은 열한 개였다.
등대 일지에 셋, 측량 일지에 둘, 전신 일지에 셋, 서고 일지에 둘, 그리고 자료실 기록에 하나. 사내보에 실렸던 그 줄은 등대 일지의 셋 가운데 하나였다.
열한 줄을 다 확인하고 나서 나는 그것을 종이에 옮겨 적었다. 옮겨 적은 이유는 화면으로 보면 흩어져 있어서 한눈에 안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 장에 모아 놓고 보려던 것뿐이었다.
적는 데 십 분쯤 걸렸다. 줄이 짧아서 한 장에 다 들어갔다.
다 적고 나서 나는 그 종이를 한참 보았다.
열한 줄이 이어져 있었다.
각 줄은 저마다 다른 묶음의 다른 면에 있던 것이다. 등대 일지 백열두 면과 측량 일지 팔십 면은 서로 아무 상관이 없다. 예순 해 전에 다른 사람이 다른 곳에서 쓴 것이다. 그런데 나온 순서대로 적어 놓으니 한 문장이었다.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 보지는 않았다. 읽으면 문장이 되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였다. 대신 나는 그 순서를 바꿔 보았다. 묶음 순서를 바꾸고 면 순서를 바꾸어 다시 적어 보았다.
바꾸면 문장이 되지 않았다. 나온 순서대로 놓을 때만 이어졌다.
나는 그것을 한 번 더 확인했다. 확인하면서 손이 조금 떨렸는데, 떨린 이유는 무섭다기보다 이것을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몰라서였다.
이어진 문장은, 자료실 기록의 마지막 장에서 끊긴 문장 뒤에 놓으면 정확히 이어졌다.
읽는 자에서 옮기는 자로, 옮기는 자에서. 거기까지가 종이에 있는 것이다. 그 뒤에 열한 줄을 붙이면 문장이 끝났다.
나는 그 뒤를 여기 적지 않겠다. 적지 않는 이유를 대자면 업무 일지에 적을 성질이 아니라는 것인데, 정확히 말하면 적고 싶지 않았다.
열한 줄이 어느 면에 있었는지를 순서대로 놓고 보면 규칙 같은 것은 없었다. 등대 백열두 면 다음이 측량 여든 면이고 그다음이 전신 스물아홉 면이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한다. 다만 묶음을 옮겨 다닌 순서만은 늘 같은 방향이었다. 등대에서 측량으로, 측량에서 전신으로, 전신에서 서고로, 서고에서 자료실 기록으로. 예순 해 전 사람들에서 작년 사람으로 오는 순서였다.
언제 나타났는지를 확인해 보려고 했다.
파일에는 만든 시각이 붙는다. 최초로 저장한 시각을 보면 언제부터 그 줄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열어 보았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파일이 한 벌이 아니었다.
내가 등록한 것이 한 벌, 보관고 서버에 올라간 것이 한 벌, 감사실에 보낸 변환본이 한 벌, 사내보 뒤에 각 부서가 내려받은 것이 이백여 벌. 만든 시각은 다 다르다. 내용은 다 같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를 시각으로 따지면 내가 등록한 것이 먼저다. 그러면 그 줄은 내가 스캔할 때부터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나는 스캔할 때 등대 일지 마지막 면의 획 하나만 보았고 나머지 열 줄은 못 보았다.
못 본 것과 없던 것을 나는 구별할 수 없다. 하루에 이백 면을 찍으면 눈이 지나간다. 지난달까지 나는 그렇게 정리해 왔다.
다만 사내보에 실린 그 줄은 다르다. 기획부 담당은 백열여덟 면을 다 읽었다고 했다. 다 읽은 사람이 좋은 줄로 골랐다면, 고를 때 그 줄이 이미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삼월 초에는 있었다. 적어도 그 한 줄은 그랬다.
이월에도 있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월에 그 파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전산실 사람에게 이런 것을 물어볼 수 있는지 잠깐 생각했다. 파일에 없던 글이 생길 수 있느냐고. 물으면 답은 안다. 그럴 수 없다고 할 것이다. 파일은 만들 때 정해지고 그 뒤에는 열어 보는 것뿐이다. 저장할 때마다 시각이 새로 붙으니 누가 고치면 표가 난다.
표가 나야 하는데 안 났다. 그러면 아무도 안 고친 것이다. 아무도 안 고쳤는데 글이 늘었으면, 그다음 문장은 내가 만들 수 없다.
사월 스무하루에 상자를 다시 열었다.
열한 줄에 해당하는 면을 다 폈다. 종이에는 없었다. 열한 자리가 다 여백이거나 다른 문장이었다.
원본은 그대로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상자를 닫았다. 확인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고 열한 자리를 두 번씩 보았다.
닫고 나서 조금 이상한 안심이 들었다. 종이가 그대로라면 자란 것은 파일 쪽이고, 파일은 회사 것이고 회사 것은 규정이 관리한다. 규정이 관리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그 안심이 얼마나 얄팍한지는 그날 저녁에 알았다.
퇴근 전에 대조표를 정리하다가 나는 내가 적어 둔 열한 줄짜리 종이를 다시 보았다. 오늘 낮에 내 손으로 적은 종이다.
그 종이가 이제 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그 문장이 한 줄로 이어져 있는 물건이었다.
파일에는 흩어져 있다. 종이에는 없다. 이어진 형태로 있는 것은 내가 만든 이 한 장뿐이다.
나는 그것을 서랍에 넣고 잠갔다. 잠그면서, 잠근다고 무엇이 달라지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서랍에는 지난달에 인쇄해 둔 접속 로그가 아직 있었다. 두 장이 나란히 들어갔다. 한 장은 꺼진 기계가 밤마다 붙는다는 기록이고 한 장은 없던 문장이 이어진다는 기록이다.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관계가 있어 보인다. 관계가 있어 보인다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다르다. 나는 그 차이를 지키려고 애쓰는 중이었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뜻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