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초하루. 자료실 업무가 전산실로 통합된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실물 자료가 외부 보관고로 다 나갔으므로 지하 자료실에 사람이 상주할 필요가 없다. 청구는 전산으로 들어오고 처리도 전산으로 하니 담당자는 전산실에서 같은 일을 하면 된다. 발령일은 이월 여드레였다.
나는 한 달 만에 다시 짐을 쌌다. 쌀 것도 별로 없었다. 공책 한 권, 볼펜, 지점에서 가져온 계산기. 서랍의 종잇조각은 버릴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다음에 이 책상을 쓸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그 사람도 서랍을 열어 볼 것이다.
문제는 상자였다. 한 달 전에 인사부와 통화한 뒤로 그대로 책상 아래에 있었고, 그 사이에 안에 든 것은 전부 파일이 되었다.
상자는 목록에 없으니 반출 신청서를 쓸 수 없었다. 폐기 서식에도 나무 상자 항목이 없다는 것은 지난달에 확인했다. 남겨 두고 가면 빈방에 목록에 없는 물건이 남는 것이고, 언젠가 청소하는 사람이 버릴 것이다.
버려도 그만인 물건이다. 안에 든 것은 다 파일이 되었고 파일은 여러 군데에 있다. 종이는 이제 사본 쪽이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들고 가기로 했다. 이유를 대자면 옛 자료의 원본이라는 것 정도인데, 그것도 정확한 이유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버리기가 뭣했다. 한 달 동안 무릎에 닿던 물건이다.
옮기기 전 일주일 동안 나는 청구를 스물세 건 처리했다. 그 가운데 열아홉 건이 파일로 끝났고 넉 건만 보관고에 실물 요청이 갔다. 실물 요청은 왕복에 이틀이 걸리고 파일은 삼십 분이면 된다. 사람들이 어느 쪽을 청구하겠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안다.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대강 보였다. 실물 요청이 줄면 보관고 비용이 아깝다는 말이 나오고, 그러면 스캔이 끝난 것부터 실물을 줄이자는 말이 나온다. 내가 결정할 일은 아니지만 흐름이 그쪽인 것은 알겠다.
이월 여드레에 자료실을 비웠다.
마지막으로 방을 한 번 돌아보았다. 빈 선반 여섯 열, 책상 세 개, 단말 세 대. 단말은 자산이라 남긴다고 했다. 전원만 내리고 그대로 두었다. 내리는 순간 화면이 한 번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나는 그것이 원래 그런 것인 줄 알았다.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지하 이 층에는 이제 아무도 상주하지 않는다. 열쇠는 관리부에 반납했고, 청구가 실물로 들어오면 관리부에서 열어 준다고 했다. 한 달 남짓 쓰던 방인데 열쇠를 넘기는 데 삼 분이 걸렸다.
전산실은 지상 육 층이다. 창이 있고 밝고 사람이 열둘 있다. 옆방이 서버실인데 문이 늘 닫혀 있고 안에서 기계 도는 소리가 난다. 소리는 종일 같은 높이로 이어진다. 지하에서 배관 식는 소리를 듣던 것과는 다르다. 그쪽은 식는 소리였고 이쪽은 도는 소리다.
내 자리는 서버실 문 바로 옆이었다. 상자는 책상 아래에 넣었다.
들고 올라오는 동안 계단에서 한 번 쉬었다. 지하 이 층에서 지상 육 층까지는 여덟 층이다. 상자는 한 달 전에 내가 들어 옮기려다 무거워서 그만두었던 그 상자다. 그때는 무릎으로 밀었고 이번에는 여덟 층을 들고 올라왔다. 안에 든 종이는 그때와 같은데 이제는 사본 취급이니, 나는 사본이 든 상자를 여덟 층 들고 올라온 셈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자리가 바뀌니 다른 일 같았다. 청구가 들어오면 처리하는 것은 같다. 다만 지하에서는 청구가 하루에 두세 건이었는데 여기서는 열 건이 넘는다. 전산실에 있으면 사람들이 전화 대신 지나가면서 말한다. 그게 더 빠르니까.
전산실 사람들은 자료를 자료로 보지 않는다. 용량으로 본다. 이번 달 증가분이 얼마고 디스크가 몇 퍼센트 찼고 이대로면 언제 증설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그 말투가 낯설었는데 며칠 지나니 나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등대 일지 백열여덟 면이 몇 메가인지를 나는 이제 안다.
일주일쯤 지나 야간 작업 로그를 볼 일이 생겼다. 감사실 파일 하나가 색인에 안 잡힌다고 해서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로그는 서버가 밤에 하는 일을 시각별로 적어 놓은 것이다. 처음 보는 화면이었다. 옆자리 사람이 여는 법을 알려 주었다.
작업이 여러 개였다. 백업, 정리, 색인. 각각 시작 시각과 끝 시각이 있었다.
색인 작업의 시작 시각이 세 시였다.
나는 그 줄을 잠깐 보았다. 새벽 세 시. 서버가 한가한 시간에 무거운 작업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업은 두 시, 정리는 두 시 반, 색인은 세 시. 담당자가 그렇게 잡아 둔 것이다.
전신 일지에서 본 시각이 떠오른 것은 그 뒤였다.
그 일지에 적힌 전문의 시각이 대개 새벽 세 시에서 네 시 사이였다. 나는 그것을 그 사람이 밤 근무를 했다는 뜻으로 읽었고 지금도 그렇게 읽는다. 예순 해 전 사람이 밤에 일한 시각과 지금 서버가 밤에 일하는 시각이 겹치는 것은, 밤이 그 시간대에 가장 한가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기계든 한가한 시간에 무거운 일을 한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감사실 파일을 찾아 색인에서 누락된 원인을 확인하고 회신했다. 파일 이름에 특수 문자가 들어가 색인 작업이 건너뛴 것이었다. 이름을 고쳐 다시 등록하니 다음 날 아침에 잡혔다.
다만 로그를 닫기 전에 한 가지를 더 보았다.
색인 작업 로그에는 그날 밤 색인한 파일 수가 적혀 있었다. 우리 부서 것, 다른 부서 것, 자료실 것. 자료실 항목이 아직 남아 있었다. 자료실은 이제 사람이 없는데 항목은 남아 있다. 부서 코드가 살아 있으면 그 코드로 등록된 것이 계속 색인된다.
그날 밤 자료실 코드로 색인된 파일은 열한 개였다. 전날 밤에는 아홉 개였고 그 전날에는 열둘이었다. 세 줄을 나란히 놓고 보니 날마다 그만큼씩 무엇인가가 등록되고 있었다.
나는 자료실에서 아무것도 등록하지 않았다. 지난주에 그 방을 비웠고 단말 전원도 내렸다.
옆자리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화면을 잠깐 보더니, 보관고에서 올라오는 것이 자료실 코드로 등록된다고 했다. 실물이 거기 있으니 그렇게 잡아 두었다고 했다.
그러면 됐다. 나는 로그를 닫았다.
닫고 나서 잠깐, 보관고에서 그날 무엇이 올라왔는지를 확인해 볼까 했다. 열한 개가 무엇인지 목록으로 보면 될 일이었다. 화면 두 번이면 나온다.
하지 않았다.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여섯 시가 다 되었고 그날 처리할 청구가 아직 세 건 남아 있었다. 확인해야 할 일이면 내일 해도 된다.
내일 하려고 적어 두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