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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

Sca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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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 열이틀. 스캔 장비가 들어왔다.

평판 스캐너 두 대와 자동 급지기가 달린 것 한 대였다. 자동 급지기는 낱장에만 쓰고 묶인 것은 평판에 한 장씩 얹어야 한다고 했다. 옛 자료는 종이가 상해 급지기에 넣으면 찢어진다.

사용법은 간단했다. 유리판 위에 종이를 얹고 뚜껑을 덮고 단추를 누른다. 빛이 한 번 지나가고 화면에 그 면이 뜬다. 확인해서 괜찮으면 저장하고 다음 면. 한 면에 십오 초쯤 걸렸다.

오전에 감사실 잔여분을 처리했다. 스물두 상자 가운데 열아홉이 왔고 셋이 남았다. 보관고에서 오는 파일은 이미 찍힌 것이라 나는 열어서 면수만 세고 등록한다. 세다 보면 옛날 사람이 어떤 장비로 이것을 찍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파일은 사진이 조금 기울어 있고, 어떤 파일은 위쪽 여백에 손가락 끝이 함께 찍혀 있다. 찍은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도 한 장씩 얹고 눌렀을 것이다.

오후에 상자를 열었다.

네 묶음부터 시작했다. 등대 일지가 먼저였다. 종이가 얇아서 뚜껑을 덮을 때 조심해야 했다. 한 장 얹고 덮고 누르고, 화면을 보고, 저장하고, 다음 장. 같은 동작이 반복되니 손이 먼저 익었다. 두 시간쯤 하고 나니 생각 없이도 손이 돌아갔다.

등대 일지는 백열여덟 면이었다. 절반쯤 하다 보니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물이 드는 시각과 나는 시각이 날마다 적혀 있고, 그 사이에 그날 있었던 일이 짧게 적혀 있었다. 등대에 혼자 있는 사람의 기록이었다. 날씨, 배, 등피 닦은 일. 그러다 어느 대목부터 물때 이야기가 길어졌다. 물이 예상보다 더 든다는 이야기가 여러 날 이어졌다.

나는 그것을 읽으려고 얹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계속 넘겼다. 그래도 눈은 지나가면서 읽는다. 사람 손으로 쓴 글씨는 화면으로 볼 때보다 종이로 볼 때 잘 읽힌다.

마지막 면에 왔다. 문장이 중간에서 끊긴 그 면이었다. 얹고 덮고 눌렀다. 빛이 지나가고 화면에 떴다.

확인하려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끊긴 문장의 마지막 글자 뒤에 획이 하나 있었다.

나는 원본을 보았다. 없었다. 종이 위에는 글자가 끝나고 여백이었다. 화면을 다시 보았다. 있었다. 확대해 보았다. 짧은 세로획이었다. 글자의 일부라기에는 애매하고 잡티라기에는 곧았다.

스캐너 유리판을 닦고 다시 찍었다. 두 번째 파일에도 있었다. 같은 자리에 같은 획이었다.

나는 전산실에 전화를 걸까 하다가 말았다. 이런 것을 물으면 대개 두 가지 답 중 하나가 온다. 유리판을 닦아라, 아니면 종이 접힌 자국이 그림자로 잡힌 것이다. 나는 유리판을 이미 닦았고 종이는 그 자리가 접혀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 번째 답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일지에 특이사항으로 한 줄 적어 두고 넘어갔다. 스캔은 원본을 그대로 옮기는 일이고 원본에 없는 것이 파일에 있으면 그것은 장비 문제다. 장비 문제는 장비 담당이 볼 일이다. 나는 내 일을 계속했다.

옮기는 일이라는 말을 나는 이 일에 쓰지 않았다. 스캔은 옮기는 것이 아니라 찍는 것이다. 종이는 그대로 있고 사진이 하나 더 생길 뿐이다. 옮긴다는 말은 있던 데서 없어져 다른 데로 가는 일에 쓰는 말이다. 그런데 등대 일지 파일을 목록에서 보고 있으면 어느 쪽이 원본인지가 잠깐 헷갈린다. 종이는 상자 안에 있고 화면에 뜨는 것은 파일이니, 앞으로 이것을 찾는 사람은 다 파일 쪽을 볼 것이다.

측량 일지로 넘어갔다. 이쪽은 종이가 더 상해 있었다. 숫자가 빽빽했다. 갱의 깊이를 재어 적은 것 같았는데 같은 자리를 여러 번 잰 기록이 이어졌다. 잴 때마다 숫자가 조금씩 커졌다. 나는 그것이 측량 오차 기록인 줄 알았다. 오차를 여러 번 재서 평균을 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다만 오차라기에는 한 방향으로만 커졌다.

이것도 눈으로 지나가면서 본 것이라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얹고 덮고 누르고, 저장하고 다음 장.

손목이 아픈 것은 뚜껑 때문이다. 얇은 종이를 얹을 때는 뚜껑을 천천히 내려야 하고, 천천히 내리려면 손목에 힘을 준 채로 버텨야 한다. 하루에 이백 번쯤 그러면 저녁에 손목이 뻐근하다.

네 시쯤 손목이 아파서 잠깐 쉬었다. 그때까지 저장한 파일이 이백 개가 넘었다. 파일 목록을 열어 보니 자료실 코드 뒤에 일련번호가 자동으로 붙어 있었다. 어제까지 등록 번호가 없던 종이들이 하루 만에 번호를 갖게 되었다.

번호가 붙으면 조회가 된다. 조회가 되면 청구가 들어온다. 청구가 들어오면 파일은 다른 부서 화면으로 간다. 종이일 때 이 묶음들은 상자 안에서 아무 데도 가지 않았는데, 파일이 되고 나면 그렇지 않다.

그 생각을 잠깐 하다가 말았다. 그것은 내가 정할 일이 아니라 규정이 정하는 일이다. 자료실에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다 스캔 대상이라고 전산실이 말했고, 나는 그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쉬는 동안 등대 일지 파일을 처음부터 몇 장 넘겨 보았다. 화면으로 보니 종이로 볼 때와 인상이 달랐다. 종이에서는 글씨가 흐린 데가 많았는데 화면에서는 대비가 올라가 또렷했다. 장비가 알아서 보정한다고 했다. 보정이란 원본에 없는 진하기를 만들어 넣는 일이다. 그것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읽기 좋으라고 넣은 기능이다.

다섯 시 반에 측량 일지 예순 면까지 하고 덮었다. 남은 것은 내일이다.

퇴근 전에 일지를 적었다. 오늘 처리한 면수와 완료 예정일을 적고, 마지막에 특이사항 한 줄을 적었다. 등대 일지 마지막 면에 원본에 없는 획이 파일에 나타남. 장비 점검 요청 여부는 다음 주에 판단.

적고 나서 그 줄을 다시 보았다. 문장으로 적어 놓으니 별일 아닌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별일이 아닐 것이다.

화면을 끄지 않고 나왔다. 끄는 법은 지난주에 배웠는데 어차피 내일 켤 것이었다. 문을 잠그기 전에 방을 한 번 돌아보았다. 책상 위에 상자가 있고 상자 옆에 다섯 묶음이 순서대로 놓여 있었다. 네 묶음은 오늘 반쯤 파일이 되었고 맨 위 공책은 아직 종이 그대로였다.

그 공책은 마지막에 하기로 했다. 남의 일지를 한 장씩 유리판에 얹는 일이 조금 마음에 걸려서, 옛것부터 먼저 하고 그것을 뒤로 미루었다.

계단을 올라오면서 등대 일지의 마지막 획을 다시 생각했다. 원본에 없고 파일에 있는 것. 장비가 진하기를 만들어 넣는다는 말을 오늘 낮에 들었으니, 없는 획을 만들어 넣는 일도 그 연장일 수 있다. 다만 보정은 있는 것을 진하게 하는 일이고 없는 것을 그리지는 않는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하루에 이백 면을 찍으면 눈이 피로하고, 피로한 눈은 없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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