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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The Po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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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 나흘. 첫 출근. 지하 이 층 자료실은 이제 전산 자료실이라고 불린다.

인사 발령은 지난주에 났다. 영업점 출납에서 본사 자료 관리로. 지점에서 넉 달을 쉬다시피 했고 그 사이에 지점 절반이 없어졌으므로 발령이 났다는 사실 자체가 다행한 일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나는 지하 근무가 처음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점은 작년 가을에 반이 없어졌다. 창구가 여섯이던 것이 셋이 되고, 출납이 둘이던 것이 하나가 되었다. 남은 하나가 나였는데 그것이 실력이나 운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나갔고 나보다 오래 다닌 사람도 나갔다. 명단을 본 적은 없다. 결과만 보았다. 겨울 내내 나는 남은 자리에 앉아 남의 몫까지 계산기를 두드렸고, 그러다 발령이 났다.

문을 열자 넓었다. 서가는 비어 있었고 벽 쪽에 빈 선반이 여섯 열 서 있었다. 방 가운데에 책상 세 개, 그 위에 단말이 세 대. 두 대는 덮개가 씌워져 있었고 한 대만 켜져 있었다. 켜진 것이 내 자리라고 했다.

빈 선반은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다. 손가락으로 훑으니 나무 결이 나왔다. 선반마다 밝은 네모가 줄지어 남아 있었는데, 상자가 놓여 있던 자리였다. 자국의 크기가 다 같았다. 같은 규격의 상자가 열두 해쯤 같은 자리에 있으면 그런 자국이 남는다고, 나중에 알았다.

인계할 사람은 없었다. 전산실 직원이 내려와 삼십 분 동안 화면 쓰는 법을 알려 주었다. 조회는 이 화면, 청구는 저 화면, 반출은 종이 없이 전산으로. 종이 대장은 지난달에 다 넘어갔고 원본은 외부 보관고에 있다고 했다. 여기서 하는 일은 청구가 들어오면 보관고에 요청을 넣고 도착한 것을 확인해 등록하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물었다. 전에 이 자리에 있던 분은 어디로 갔느냐고.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답했다. 인사 이동이라고 했다. 자기도 자세히는 모른다고 했다. 인사 기록을 열어 보니 십이월 열엿새 자로 면직이었다. 사유란은 비어 있었다.

사유란이 비어 있는 면직은 흔하다. 작년에 나간 사람들 기록도 대개 그랬다. 사람이 나가는 데 이유를 적는 칸이 있다는 것부터가 요즘은 형식이다. 나는 화면을 닫았다.

화면을 켜자 조회 목록이 올라왔다. 첫 줄에 자료실 코드가 있고 그 뒤에 여덟 자리가 붙어 있었다. 뒤 넉 자리는 내 사번이었다. 전산실 직원이 담당자부터 띄우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만든 화면이라고 했다.

나는 그 줄을 별로 오래 보지 않았다. 제 사번이 화면에 뜨는 것은 어느 부서에서나 있는 일이다.

책상은 셋 다 같은 것이었는데 내 자리 것만 상판에 자국이 있었다. 사각으로 먼지가 덜 앉은 자리. 전에 다른 기계가 놓여 있던 자국이다. 새 단말의 발이 그 자국 안에 들어앉았는데 발보다 자국이 조금 넓어서, 가장자리가 사각으로 남았다. 걸레로 밀면 지워질 것이었다. 첫날부터 남의 흔적을 지우는 것도 이상해서 그냥 두었다.

오후에 청구가 두 건 들어왔다. 하나는 기업여신부에서 1997년 하반기 여신 원장을, 하나는 감사실에서 영업정지사 이관 목록을 찾았다. 화면에 번호를 넣고 보관고에 요청을 넣으니 접수되었다는 표시가 떴다. 종이 한 장 만지지 않고 두 건이 끝났다.

여신부 것은 삼십 분 만에 회신이 왔다. 해당 원장은 이미 스캔되어 있다고, 파일로 보내겠다고 했다. 잠시 뒤 화면에 파일이 도착했다. 열어 보니 원장 한 면 한 면이 사진으로 들어 있었다. 손으로 그은 괘선, 잉크가 번진 자리, 접혔던 자국까지 그대로였다.

나는 그것을 여신부로 전달했다. 파일을 옮기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옮기고 나서도 내 화면에 그 파일은 그대로 있었다. 종이라면 넘겨 주면 내 손에 없는데 파일은 넘겨 주어도 내 손에 있다. 그것이 편하다고 생각했고, 편하다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감사실 것은 회신이 늦었다. 다섯 시가 다 되어 보관고에서 전화가 왔다. 영업정지사 이관 목록은 상자 수가 많아 스캔이 아직 안 끝났으니 순차로 보내겠다고 했다. 몇 상자냐고 물으니 스물두 상자라고 했다. 나는 그 숫자를 화면 메모에 적어 두었다.

서랍을 열어 보았다. 첫째 칸은 비어 있었고 둘째 칸에 볼펜 두 자루와 종잇조각 하나가 있었다. 조각에는 두 칸이 그어져 있고 칸마다 시각이 적혀 있었다. 여덟 시 이십 분, 여덟 시 사십일 분. 무엇의 시각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앞뒤로 뒤집어 보아도 그것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남이 쓰던 책상에는 늘 이런 것이 나온다.

네 시 반쯤에 난방이 꺼졌다. 지하는 난방이 꺼지면 금방 식는다. 손을 비비다가 무릎에 무엇이 닿아 책상 아래를 보았다.

상자가 하나 있었다.

나무 상자였다. 반출 번호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이관된 물건에는 다 번호표가 붙어 있다고 아침에 배웠다. 나는 화면에서 목록을 조회해 보았다. 자료실 잔여 물품 목록에 나무 상자는 없었다. 없는 물건이 책상 아래에 있었다.

뚜껑에 손을 얹었다가 뗐다. 첫날에 남의 상자를 여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 귀찮았다. 무엇이 들었든 목록에 없는 물건이면 처리 절차부터 알아봐야 하고, 그러자면 인사부에 전화를 걸어 전임자 물품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첫날에 할 일은 아니었다.

상자를 조금 밀어 넣고 무릎을 넣었다. 상자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퇴근 전에 오늘 한 일을 일지에 적었다. 전산 자료실은 일지를 종이로 쓰지 않아도 되지만, 지점에서 십 년 가까이 손으로 적어 온 버릇이 있어서 공책을 하나 가져왔다. 첫 장에 날짜를 쓰고 오늘 처리한 청구 두 건과 배운 화면 이름을 적었다. 마지막 줄에는 책상 아래 상자를 적을까 하다가 적지 않았다. 아직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적는 것은 일지가 아니라 메모다.

여섯 시에 퇴근하려고 화면을 끄려는데 끄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전산실에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내일 아침에 다시 켤 것이다. 지점에서도 단말은 늘 켜 둔 채였다.

화면에는 조회 목록이 떠 있었다. 첫 줄에 자료실 코드와 내 사번. 그 위 왼쪽 끝에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문을 잠그고 계단을 올라왔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밖이 벌써 어두웠다. 정월 초의 저녁은 짧다.

계단 중간에서 한 번 멈췄다. 아래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는데, 다시 들어 보니 난방이 꺼진 뒤 배관이 식는 소리였다. 지하는 그런 소리가 오래 남는다고 아침에 전산실 직원이 말해 주었다.

나는 첫날치고 조용한 하루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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