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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he Next Med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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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 열엿새. 아침 여덟 시. 계단을 내려와 문을 열었을 때 방은 어제 두고 간 그대로였다.

여덟 시 사십 분에 업체가 왔다. 회선을 끊는 일은 생각보다 짧았다. 벽의 단자함을 열고 선을 뽑고 끝을 테이프로 감아 두는 것이 전부였다. 뽑히는 순간에 소리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겨우내 그 선으로 무엇이 오갔는지를 아는 사람이 이 방에 하나 있었고, 그 하나는 벽에서 두 걸음 떨어져 서 있었다.

옛 단말은 아홉 시 십오 분에 실려 나갔다. 두 사람이 양쪽을 들었고 화면이 아래를 향했다. 문턱을 넘을 때 기계가 한 번 기울었다. 어제저녁에 껐으므로 화면은 검었고 기울어도 아무것도 흐르지 않았다. 복도로 나가는 뒷모습을 나는 통로 끝에서 보았다. 그것이 이 방에서 마지막으로 나간 아날로그 물건이었다.

상자는 열 시부터 나갔다. 스물두 상자가 먼저 나가고 열한 상자가 뒤따랐다. 번호표 순서대로였다. 예순 해가 먼저 나가고 열두 해가 뒤에 나갔다. 반장이 손수레를 두 번 오갈 때마다 방이 한 뼘씩 넓어졌다. 마지막 손수레가 문턱을 넘을 때 나는 상자 하나에 손을 얹었다가 뗐다. 어느 상자였는지는 보지 않았다.

빈 자리가 남았다. 책상 위에 사각으로 먼지가 덜 앉은 자국이 있었다. 겨우내 그 사각 안에서 결이 자라고 낮아지고 두꺼워졌다. 자국은 얇았고 손으로 문지르면 지워질 만했다. 나는 문지르지 않았다.

열한 시에 새 단말이 들어왔다. 어제까지 견본이던 것과 같은 기종이 세 대였다. 한 대는 옛 단말이 있던 자리에 놓였다. 사각 먼지 자국 위에 새 기계의 발이 얹혔다. 자국보다 발 자리가 조금 좁았다.

오후 두 시에 회선이 붙었다. 전산실 사람이 접속을 시험하고 조회 화면을 띄웠다. 화면이 켜지고 목록이 올라오는 데 몇 초가 걸렸다. 그가 잘 뜬다고 했고 나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다.

첫 줄에 자료실 코드가 있었다. 그리고 뒤 넉 자리는 내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옆에서 다음 화면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그 줄은 자료실 담당자 코드였고 조회 화면이 담당자부터 띄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만든 화면이었다. 그 줄이 어제까지 다른 기계의 다른 칸에 있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전산실 사람이 조회를 몇 개 시험해 보라고 했다. 나는 오전에 나간 상자 하나를 찾아보았다. 번호를 넣자 화면에 항목이 떴다. 옛 목록 번호는 사라지고 새 번호가 앞에 붙어 있었다. 열두 해 동안 매겨진 순서가 오늘 아침 반출 순서로 다시 매겨진 것이다. 사서장이 부르던 항 번호는 이 화면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항목 아래 비고란에 옛 번호가 한 줄 남아 있었다. 이관 업체가 대조용으로 넣어 둔 것이라고 했다. 새 번호와 옛 번호가 한 화면에 나란히 있었다. 옮겨 적힌 것은 사라지지 않고 두 번 적힌다는 것을, 나는 겨우내 종이에서 보았고 오늘 처음으로 화면에서 보았다.

세 시가 지나 사람들이 올라간 뒤에 나는 그 화면 앞에 앉았다.

조회 전용 화면이다. 발신 기능은 없다. 도면에도 그렇게 적혀 있고 기기 목록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화면 왼쪽 위에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어제 견본 단말에서 보던 박자였다. 옛 단말이 이 방에 없는데도 박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은 실려 나가지 않았다.

나는 겨우내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 왔고, 어느 매체에도 있지 않다는 답에 사흘 전에 닿았다. 그것은 자리에 있었다. 자리가 남아 있으면 결도 남는다. 오늘 이 방에서 나간 것은 기계였지 자리가 아니었다. 자리는 새 기계의 발 아래에 그대로 있었고, 그 위에 다른 화면이 얹혔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매체가 바뀌는 일은 끝이 아니었다. 종이에서 유리로 옮겨 온 것이 유리에서 다시 다른 유리로 옮겨 갔을 뿐이다. 예순 해 앞의 전신수는 전건과 종이 일지를 썼고 나는 단말과 필름을 썼고 다음 사람은 이 화면을 쓸 것이다. 도구가 바뀌는 동안 자리는 한 번도 비지 않았다.

이 방에서 겨우내 일어난 일을 다음 사람이 알 수 있을까를 잠깐 생각했다. 조회 기록에는 내가 무엇을 열었는지가 남고 발신은 남지 않는다. 어제까지의 기계가 그랬으니 오늘부터의 기계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상자 안의 노트뿐이다. 노트는 목록에 없으므로 회사가 세지 않고, 회사가 세지 않으므로 없어지지도 않는다. 세지 않는 것이 남는다는 셈을 나는 이 겨울에 여러 번 만났다.

네 시에 난방이 꺼졌다. 복도에서 문 여닫는 소리가 한 번 들렸다. 겨우내 두 번이던 것이 지난주에 한 번이 되었고 오늘도 한 번이었다.

책상 아래에서 상자를 꺼냈다. 네 묶음 위에 내 정리 노트를 얹고 뚜껑을 덮기 전에 받는 이 칸을 보았다. 다음 기록 담당. 아침보다 짙었다. 나는 그 칸에 이름을 적어 넣을 수 없다. 이름을 모르기도 하고, 안다 해도 적는 것이 부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전임자도 같은 이유로 내 이름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리를 적었고 그 자리에 내가 왔다.

뚜껑 안쪽의 인장 자국을 보았다. 다섯이었다. 여섯 번째 자리는 눌린 데가 없었다. 나는 그 빈자리를 손끝으로 짚어 보고 뚜껑을 덮었다.

상자를 책상 아래 제자리에 밀어 넣었다. 목록에 없는 물건이므로 이 방에 남는다. 남아서 다음 손을 기다린다.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아직 하루가 남아 있었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세지 않기로 했다.

방은 조용했다. 상자가 나가고 기계가 나간 방은 겨우내 가장 넓었고, 넓은 만큼 소리가 오래 돌았다. 의자를 조금만 움직여도 그 소리가 서가 끝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여름까지 다섯이던 자리가 오늘 하나였고, 그 하나도 오늘까지였다.

두려운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겨우내 나는 이 날짜를 매일 보았고 매일 보는 것에는 겁이 오래 붙어 있지 못한다. 사서장은 통보를 받고 놀라지 않았고 나는 예고를 받고 놀라지 않는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자기 자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몰랐고 나는 안다는 것뿐이다. 안다고 해서 덜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새 화면 앞에 앉아 정리 노트를 마지막으로 폈다. 오늘 자를 적어야 했다. 겨우내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일이다. 열엿새 자를 적고 나면 이 겨울의 기록이 닫힌다.

펜을 들었다. 첫 문장을 적었다. 매체가 바뀌어도 자리는 바뀌지 않는다고, 그러므로 다음 손도 같은 순서를 지날 것이라고, 읽는 자에서 옮기는 자로, 옮기는 자에서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보내는 곳이 화면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화면의 커서는 왼쪽 위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조회 전용 화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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