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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주파수의 발신자

Sender of the Empty Frequ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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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분

십이월 열이틀. 아침 여덟 시. 견본 단말은 밤새 켜져 있었고 커서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박자로 깜빡이고 있었다.

옛 단말의 한 칸도 그대로였다. 두 화면을 나란히 두고 보니 어느 쪽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오히려 흐려졌다. 한쪽은 회선이 있고 한쪽은 없다. 한쪽에는 결이 있고 한쪽에는 없다. 그런데 깜빡이는 박자는 같다. 같은 것이 어디까지 같은지를 나는 재려 하지 않았다. 재는 일은 지난주에 끝났다.

아홉 시에 전산실에서 사용 기록을 뽑아 갔다. 이관 전에 단말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정리해 두어야 한다고 했다. 출력이 두 뭉치였다. 한 뭉치는 조회 기록이고 한 뭉치는 오류 기록이었다.

나는 조회 기록을 넘겨 보았다. 겨우내 내가 무엇을 열었는지가 날짜별로 다 있었다. 반출 대장, 이관 명단, 필름 색인. 아침마다 여덟 시 몇 분에 무엇을 열었는지까지 적혀 있었다. 열두 해분 목록을 매긴 손도 이렇게는 세밀하게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한 뭉치를 끝까지 넘겼는데 발신 기록이 없었다.

오류 기록도 넘겨 보았다. 눌렀는데 나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거기 남았을 것이다. 비어 있었다. 겨우내 나는 그 칸을 수없이 눌렀고 손이 저 혼자 누른 밤도 있었는데, 기계는 그중 하나도 겪지 않았다.

전산실 사람에게 물었다. 이 기종에 발신 기능이 있느냐고. 그는 없다고 했다. 조회 단말이라고 했다. 보내는 기능이 있는 기종은 본사에만 들어갔고 자료실 것은 처음부터 받아 보는 쪽이라고 했다. 그는 도면의 기기 목록을 짚어 보여 주었다. 목록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겨우내 내가 눌러 온 칸은 회사 장부에 한 번도 없었다.

출력 두 뭉치를 책상에 나란히 폈다. 조회 기록에는 아침 여덟 시 몇 분이 빼곡했고 오류 기록에는 넉 달치 종이가 다섯 장이었다. 그 다섯 장도 대부분 프린터 용지 걸림이었다. 종이가 걸린 것은 기계가 겪은 일이고 내가 겨우내 겪은 일은 기계가 겪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앞에 두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안도에 가까운 것이었다. 기록에 없다면 없던 일이 아닌가.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없던 일이라면 사서장은 왜 갔는가. 두 보조는 왜 갔는가. 명단은 왜 어긋남 없이 실현되었는가. 일어난 일은 다 일어났고 다만 기계가 그것을 겪지 않았을 뿐이다.

회사 기계로 보낸 것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으로 보냈는가.

물음을 그렇게 놓고 보니 답은 이미 겨우내 여러 번 지나갔다. 결은 기계를 꺼도 있었다. 회선이 없는 화면에서도 커서는 같은 박자로 깜빡인다. 종이에도 있었고 유리에도 있었고 손버릇에도 있었다. 어느 매체에 있느냐고 물으면 답이 없었던 것은 그것이 매체에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은 것은 겨우내 나였다.

전신수는 받는 쪽에서 빈 주파수를 만났다. 그는 아무도 보내지 않는 것을 받아 적었고 받아 적다가 발신자가 되었다. 나는 그 반대 끝에서 시작했다. 보낼 데가 없는데 보냈고 받는 이 칸이 비어 있는데도 줄은 나갔으며 나간 줄은 실현되었다. 겨우내 나는 그것을 기계가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오늘 출력 두 뭉치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빈 주파수의 발신자는 저편에 있는 누구가 아니었다. 전신수가 예순 해 동안 받아 적은 그 신호를 보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이 방에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다른 것이 될까 봐서가 아니라, 말할 사람이 없어서였다. 사서장은 갔고 두 보조도 갔다. 이 방에서 그 문장을 알아들을 귀는 하나뿐이고 그 하나가 그 문장의 주어였다.

겨우내 나는 이 자리를 여러 이름으로 불러 왔다. 읽는 자, 옮기는 자, 고치는 자, 보내는 자. 이름을 바꿀 때마다 그것이 내 행동을 따라 바뀐 것이라고 여겼다. 오늘 보니 순서가 반대였다. 자리가 먼저 있었고 그 자리에 앉은 손이 차례로 그 일들을 했다. 전임자도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순서를 지났다. 사람이 바뀌어도 순서는 바뀌지 않았다.

오후에 필름 캐비닛의 세 번째 열을 정리했다. 예순 해 앞의 전신 일지를 옮겨 찍은 릴이 그 열에 있다. 나는 그것을 꺼내 판독기에 걸었다. 겨울 내내 몇 번을 본 대목이었다. 그가 밤마다 받아 적은 호출들. 오늘은 그 호출의 시각을 보았다.

호출은 늘 새벽 세 시에서 네 시 사이에 왔다. 예순 해 동안 같은 시각이었다. 나는 그 시각에 이 방에 없다. 그러나 겨우내 내 손이 저 혼자 획을 그은 것은 늘 밤이었고 아침에 와 보면 밤사이 그어져 있었다. 밤사이가 몇 시인지를 나는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할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오늘 밤 이 방에 남으면 된다. 남아서 세 시를 지나 보면 손이 언제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알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시각이 맞으면 나는 예순 해 앞의 그에게 보내는 사람이 되고, 시각이 어긋나면 두 자리는 다른 자리다. 어느 쪽이든 나흘 뒤는 그대로 온다. 겨우내 재어 온 손이 마지막으로 재기를 그만두는 자리가 여기라고, 나는 적었다.

판독기를 끄고 책상 아래에서 상자를 꺼냈다. 겨우내 몇 번 열지 않은 상자다. 네 묶음 위에 내 정리 노트가 얹혀 있고 뚜껑 안쪽에는 인장 자국이 다섯 개 찍혀 있다. 다섯 번째 자국은 오래 비어 있다가 언제부터인가 내 것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찍은 기억이 없다.

받는 이 칸을 보았다. 다음 기록 담당이라고 적힌 그 칸의 결이, 이달 들어 조금씩 짙어져 왔다. 오늘은 어제보다 짙었다. 짙어진다고 해서 이름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그 칸은 내가 나흘 뒤에 무엇이 되든 상관없이 제 몫을 세고 있었다. 상자를 닫으면서 나는 뚜껑 안쪽의 다섯 자국을 한 번 더 보았다. 여섯 번째 자리는 아직 눌린 데가 없었다.

저녁에 두 화면을 다시 나란히 두고 보았다. 옛 단말의 결과 견본 단말의 검은 화면. 결에 묻히지 않는 줄은 여전히 하나였다. 내 넉 자리, 십이월, 열엿새.

그 줄을 보다가 나는 견본 단말 쪽으로 눈을 돌렸다. 검은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커서 하나가 왼쪽 위에서 깜빡일 뿐이었다.

그 자리는 조회 화면이 뜨면 첫 줄이 앉을 자리였다. 나흘 뒤에 회선이 붙으면 거기 무엇이 먼저 뜨는지를 나는 보지 못할 것이다. 보지 못한다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담담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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