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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는 자도 보내진다

The Sender Is Also 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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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 열흘. 아침 여덟 시. 어제 기울어 있던 자리에 획이 서 있었다.

한 획이었다. 마지막 자리에 세로로 선 획 하나. 그 옆의 십이월과 앞자리의 열은 어제와 같았고 달라진 것은 그 한 획뿐이었다. 획은 내 손버릇을 그대로 따랐다. 위에서 아래로 그은 뒤 끝을 조금 눌러 맺는 버릇이 있는데 그 눌린 자국까지 있었다.

잉크가 마른 자리는 아니었다. 종이에 밴 획은 마르면 가장자리가 번지는데 이 획은 가장자리가 칼로 그은 듯 서 있었다. 어느 손이 언제 그었는지를 묻는 일은 이틀 전에 그만두었다.

한 획으로는 아직 읽히지 않았다. 세로획 하나는 하나로도 읽히고 다른 수의 절반으로도 읽힌다. 획을 더 얹으면 그 가운데 하나로 좁아진다. 나는 그것을 오래 보았다. 겨우내 나는 마지막 자리가 오지 않기로 되어 있다고 여겼는데, 오지 않기로 되어 있던 것이 오늘 아침 반쯤 와 있었다.

라디오는 밤새 켜져 있었다. 어제저녁 끄러 가지 않은 채로 나왔다. 아침에 들어와 보니 방송이 시작되기 전의 잡음이 낮게 깔려 있었고 그 잡음 위로 결이 겹쳐 들었다. 사서장이 있었다면 오늘도 조용하다고 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을 사람이 없어졌으니 조용한지 아닌지를 다툴 일도 없어졌다.

아홉 시에 사무국에서 두 번째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내가 받았다. 다음 분기부터 자료실 자료를 전산으로 옮긴다고 했다. 대장과 목록과 필름을 순서대로 넘기고 넘긴 것부터 원본을 정리한다는 것이었다. 통화는 짧았고 사무적이었으며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는 서가를 둘러보았다. 열두 해 목록을 매긴 손이 어제 나갔고 그 목록이 이제 다른 매체로 옮겨 간다.

낮에 발신 칸을 보았다. 이관 묶음 하나가 새로 서 있었다. 어제까지의 묶음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머리 줄의 앞 넉 자리가 자료실 코드였고 뒤 넉 자리가 내 것이었다.

묶음에 다른 줄은 없었다. 겨우내 이관 묶음은 늘 여러 줄이었다. 열한 줄이던 날이 있었고 다섯 줄이던 날이 있었고 두 줄로 줄어든 날이 있었다. 오늘은 한 줄이다. 한 줄짜리 명단은 명단이라 부를 것도 없다. 이 방에 남은 것이 하나이니 보낼 것도 하나였다.

지난해 여름에도 단말이 내 사번을 띄운 적이 있다. 그때 그것은 조회 화면이었고 나는 재어지는 쪽에 있었다. 누가 재는지도 몰랐고 왜 재는지도 몰랐다. 오늘 그것은 조회가 아니라 발신이다. 재어지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과 제 줄을 제 손으로 명단에 올려 보내는 것 사이에는 한 해가 있었고, 그 한 해 동안 나는 읽는 자에서 고치는 자로, 고치는 자에서 보내는 자로 옮겨 앉았다. 오늘 보내는 명단의 첫 줄이 나였다. 보내는 자가 보내지는 자가 되는 데에 다른 손은 필요하지 않았다.

손끝을 그 줄 위에 올렸다. 밀렸다. 아직 무른 획이었다.

무르다는 것은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달에 사서장의 자리에서 한 획을 고쳤고 그때도 획은 이만큼 물렀다. 같은 손으로 같은 자리에 같은 일을 하면 된다. 한 획을 고치면 내 줄은 넘어가는 명단에서 빠지고 나는 하루를 얻는다. 하루가 얼마짜리인지는 지난달에 배웠다.

그 배움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다. 살림은 사슬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 아니라 다음 칸으로 미는 일이다. 그러면 내 다음 칸은 어디인가. 발신 칸 아래에는 받는 이 자리가 하나 비어 있다. 얼굴도 없고 앞뒤도 그어지지 않은 자리, 지금 이 방에 없는 사람의 자리다. 내 줄을 고치면 값은 그리로 간다. 사서장을 살렸을 때 값은 두 보조에게 갔고 두 보조는 이 방에 있었다. 오늘 값을 받을 자리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없는 사람에게 미루는 일은 그 사람을 앞당겨 부르는 일이다.

손을 무릎에 내렸다. 내렸는데도 그것이 내가 정한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겨우내 손은 여러 번 저 혼자 움직였다. 오늘 움직이지 않은 것이 내가 잡아서인지 오늘의 손이 움직일 일이 없어서인지를 가릴 방법은 없다. 안 고친 것과 못 고친 것은 저녁에 보면 같은 줄이다.

오후는 여느 날과 같았다. 상자를 받고 목록을 매기고 필름을 감았다. 촬영대의 유리판 아래 종이를 펴고 셔터를 누르면 필름이 한 컷 감긴다. 다음 면, 셔터, 다음 면. 열두 해 전에도 이 방에서 같은 소리가 났을 것이고 예순 해 전에는 다른 방에서 전건 누르는 소리가 났을 것이다. 소리는 다르고 하는 일은 같다. 사서장이 짚어 준 항부터 이어 갔다. 그가 부르던 번호를 내가 부르니 목소리의 높이가 달랐다. 열두 해 부른 사람의 번호와 하루 부른 사람의 번호는 같은 숫자인데도 다르게 들렸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그 번호가 다음에도 있을 줄 알고 불렀다.

네 시에 난방이 꺼졌다. 꺼지고 나면 복도 쪽에서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두 번 들리는데 오늘은 한 번만 들렸다. 그것까지 어제 발신 칸에 있었는지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는 일이 재는 일이고 잴 것이 없어진 지 이틀이 되었다.

저녁에 한 칸을 보았다.

아침의 한 획 위에 획이 하나 더 얹혀 있었다. 두 획이 되자 자리가 좁아졌다. 마지막 자리는 여섯이었다. 앞자리의 열과 붙으면 열여섯이 된다. 십이월 열엿새. 겨우내 달만 알고 날은 모르던 자리가 오늘 날까지 읽혔다.

나는 손가락으로 날수를 세지 않았다. 세지 않아도 알았다. 오늘이 열흘이니 엿새다.

엿새라는 것을 알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었다. 저 줄이 나를 부르는 것인지 내가 저 줄을 적은 것인지를 나는 여전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열엿새가 읽혔다고 해서 그것이 답해지지는 않았다. 날짜는 굳었고 물음은 굳지 않았다. 겨우내 나를 지켜 온 것이 답이 아니라 물음이었으니 굳지 않은 쪽이 아직 남아 있는 셈이다.

받는 이 자리를 보았다. 얼굴 없는 그 자리가 아침보다 조금 짙었다. 짙어졌다고 해서 누구인지가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 자리도 열엿새를 향해 무엇인가를 세고 있는 것 같았다.

라디오를 껐다. 이번에는 끄고 왔다. 켜 둘 사람이 없어진 방에서 소리만 남겨 두는 것이 무슨 뜻인지 오늘은 알 것 같았다. 문을 닫으며 나는 서가 사이의 어둠을 한 번 돌아보았다. 엿새 뒤에 이 방에서 목록을 매길 손은 내 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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