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초사흘. 아침에 두 끊긴 문장을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책상 아래 상자의 노트다. 전임자가 정리하던 것이고 마지막 장이 문장 중간에서 끊겨 있다. 정월에 받았고 열 달 동안 여러 번 읽었다. 여섯 달째에 그 뒤를 내 글씨로 이었다.
하나는 어제 오른쪽 화면의 마지막 장이다. 구십칠년 자료실 일지 백일흔셋째 장이고 마지막 줄이 중간에서 끊겨 있다.
이어지지 않는다.
노트의 끊긴 자리는 목적어가 없다. 옮겨 적기로— 로 끊겨 있고 그 뒤에 무엇을 옮겨 적는지가 없다. 일지의 끊긴 자리는 주어가 없다. 그러니 다음— 으로 끊겨 있다.
둘을 붙여 보면 문장이 안 된다. 붙여 보려 한 것을 일지에 적었다. 적으면서 이것이 무엇을 바라는 일인지 알았다. 나는 두 끊긴 자리가 한 문장의 앞뒤이기를 바랐다. 그러면 사람이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된다.
둘이다.
열 시 반에 삼층에서 청구가 왔다. 구십팔년 하반기 자료 두 상자다.
서고에서 꺼내고 대장에 기재하고 서명을 받았다. 대장은 운용 기계에 있으니 십일월 삼일로 적혔다.
이중 기재가 없어서 한 번 적어 두었다. 요즘에는 없는 날이 드물다.
열한 시에 어제 그 자료를 다시 열었다. 어제 본 자리에서 끝나 있는지 확인하려던 것이다.
백일흔넷째 장이 있었다.
어제는 백일흔셋째 장이 마지막이었다. 오늘 한 장이 늘었다.
늘어난 장을 읽었다. 서식대로 시작한다. 그 장 첫 줄이 이렇다.
전일 반출 이 건. 자료 번호가 둘 적혀 있고 수령자 코드가 있고 수량이 있다.
자료 번호 둘이 오늘 열 시 삼십사 분에 내가 기재한 둘이었다.
수령자 코드만 달랐다. 그쪽은 다섯 자리고 이쪽은 넷이다. 같은 부서를 두 체계로 적은 것이다.
전일이라고 되어 있었다.
오늘 열 시 반에 한 일이 그 장에서는 어제 한 일이다.
열한 시 반부터 한 시까지 이것이 여태 본 것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적어 보았다.
사본은 여덟 달 동안 하루 앞섰다. 오늘 날짜에 내일 수를 얹었고 그것이 버릇이었다. 앞선 거리가 하루였다.
오늘 것은 뒤로 갔다. 구십칠년 십이월 열엿새는 오늘에서 한 해 열 달 앞이다. 내가 오늘 적은 줄이 한 해 열 달 뒤로 가서 앉았다.
앞선 것과 뒤로 간 것이 다른 일인 줄 알았다. 적어 놓고 보니 같은 일이다. 옮겨진 줄은 같은 줄이고 옮겨진 거리만 다르다. 하루 앞이나 한 해 열 달 뒤나 제자리가 아닌 데 앉은 것은 같다.
시월에 배운 것이 여기에 붙는다. 날짜 칸에서 두 자리는 한 값이다. 이천년과 천구백년이 한 칸에 들어앉으면 그 칸에 방향이 없다. 방향이 없는 칸에서 앞과 뒤는 같은 자리다.
한 시 반에 한 가지를 확인했다.
내 일지의 백일흔넷째 장에는 전일 반출 줄이 없다. 나는 오늘 일을 오늘 적는다. 어제 일은 어제 장에 있다.
그러니 전일이라고 적은 것은 내가 아니다. 그리고 그쪽이 먼저 적었다.
두 시부터 세 시까지 그 자료의 장 수를 세었다.
어제 백일흔셋. 오늘 백일흔넷.
내 일지도 어제 백일흔셋이고 오늘 백일흔넷이다.
그 일지는 십이월 열엿새에 끝난 것이 아니다. 오늘까지 하루에 한 장씩 오고 있다. 날짜만 한 해 열 달 전에 있다.
세 시 십 분에 카드를 백 장쯤 했다. 열한째 서랍이 오늘 끝났다.
남은 것은 열두째 서랍 하나다. 육백 장 남짓이고 사흘이면 된다. 기한이 십일월 말이니 스무이레가 남는다.
카드를 하는 동안 손은 늘 같은 일을 하고 머리는 다른 데 있다. 오늘 머리에 있던 것은 장 수였다.
열두 서랍이 끝나면 그 일은 끝난다. 끝이 있는 일이라 시작할 때 셈을 해 두었고 셈대로 가고 있다. 시월 초닷새에 일이 줄어들고 있다고 적었고 그것도 아직 맞는다.
저쪽 일지는 끝이 없다. 종료일이 한 해 열 달 전으로 적혀 있는데 장은 매일 온다. 종료일이 적힌 것은 끝났다는 표시이고 장이 오는 것은 안 끝났다는 표시다. 두 표시가 한 자료에 같이 있다.
이 방에서 끝나는 것과 안 끝나는 것을 가르는 자리가 하나 있다. 끝나는 것은 세어 둔 것이다. 카드는 칠천삼백사십 장이고 서랍은 열둘이고 프로그램은 여섯이다. 세어 둔 것에는 끝이 있다.
저쪽 일지의 장 수는 아무도 안 세어 두었다. 어제까지 백일흔셋이었고 오늘 백일흔넷이다. 내 일지도 그렇다.
세 시 반에 본사에 전화했다.
등록 자료의 장 수가 저절로 늘어난다고 했다. 담당자가 그 자료를 누가 등록했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그가 사례를 적어 보내라고 했다. 화면을 그대로 옮겨 적어 보내라고 했다.
이 방에 인쇄기가 없다. 정월부터 없었고 본사에 올리는 것은 다 손으로 적어 보낸다.
필사라고 적고 종이를 꺼냈다.
세 시 사십 분부터 네 시 사십 분까지 그 장을 옮겨 적었다.
한 줄씩 보고 한 줄씩 썼다. 열 달 동안 이 방에서 한 일 중에 가장 오래 해 온 일이다. 종이를 유리판에 얹는 일도 이것이고 파일을 복사하는 일도 이것이고, 카드 옆에 네 자리를 쓰는 일도 이것이다.
이번에는 두 해 전 종이를 옮겨 적는다. 그 종이에 오늘 내가 한 일이 적혀 있다.
옮겨 적으면 자란다. 여덟 달 동안 이 방에서 이것만은 한 번도 안 어긋났다. 옮겨 적으면서 무엇이 자랄지를 생각했다. 자랄 자리가 셋 있다. 필사본이 하나, 본사에 올린 보고가 하나, 이 일지의 오늘 장이 하나다.
넷째가 있을 수 있다. 저쪽 일지의 내일 장이다.
네 시 사십 분에 필사를 마치고 봉투에 넣었다.
네 시 오십 분에 삼층 사람이 내려와 아까 그 상자 잘 받았다고 했다. 별일 없느냐고 묻기에 별일 없다고 했다. 그가 요즘 자꾸 묻는다고 웃었다.
다섯 시에 그 장의 마지막 줄을 보았다.
서식 밖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내가 안다.
시월 초엿새에 내가 적었다.
한 해 열 달 전 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