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열이틀. 아침에 내 넉 자리를 종이에 적어 놓고 화면과 맞췄다.
넉 자리를 종이에 적어 본 것은 정월 이후 처음이다. 적을 일이 없다. 서식의 칸에 넣을 때는 손이 적고 눈은 안 본다. 오늘은 눈으로 보려고 적었다.
한 자리씩 맞췄다. 넷 다 같았다.
아홉 시에 검색했다. 삼백여섯이었다.
일치라고 적고 나서 이것이 왜 말이 안 되는지를 적어야 했다.
자료실 코드는 작년에 바뀌었다. 합병 정리 때 부서 체계를 다시 짜면서 지금 쓰는 넉 자리가 생겼다. 그 전에는 자리 수가 달랐다고 들었는데 들은 것은 근거가 아니다. 근거를 찾으러 서고에 내려갔다.
구십칠년 종이 대장의 수령자 칸을 보았다.
다섯 자리였다.
다섯 자리면 넉 자리가 아니다. 두 해 전에는 이 방의 코드가 다섯 자리였고 지금은 넷이다. 그러니 구십칠년 대장에 넉 자리가 있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것이 화면에 다섯 줄 있다.
열 시 반에 이관 지침을 찾아보았다. 정월에 인계받은 것 중에 그것이 있다. 옛 자료를 등록할 때 코드를 새로 매기지 말고 원본에 적힌 대로 옮기라고 되어 있다. 대응표는 안 만들었다. 만들라는 말이 없고 나는 만든 적이 없다.
그러면 화면의 다섯 줄이 새 코드를 달고 있는 것은 이관 때 누가 바꿔 넣은 것일 수 있다. 지침을 어겼다면 그렇게 된다.
한 가지가 그것을 막는다.
같은 화면의 수령자 칸이 다섯 자리다.
한 자료 안에서 코드를 바꿔 넣으려면 칸마다 골라야 한다. 수령자는 그대로 두고 기재자만 바꾼다. 기재자 중에서도 이름이 든 이백열넷은 그대로 두고 마지막 다섯만 바꾼다. 그렇게 골라 넣는 일을 할 사람이 이 방에 없다.
열한 시 반에 넉 자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다시 확인했다.
앞 두 자리가 부서고 뒤 두 자리가 자리다. 자리는 직무를 말한다. 이 방의 자리는 하나다. 기록 담당 하나가 전산실에 딸려 있고 그 하나가 나다. 그러니 이 넉 자리는 부서를 가리키면서 사람 하나를 가리킨다.
부서만 가리키는 것이라면 덜 나빴다. 부서는 두 해 전에도 있었다. 뒤 두 자리가 사람 하나로 좁혀지는 것이 오늘의 자리다.
열두 시부터 한 시까지 카드를 했다. 일곱째 서랍이 삼백 장쯤 남았다.
손으로 두 자리를 네 자리로 늘리면서 오늘 아침 것을 다시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은 자리를 늘리는 일이다. 구칠은 두 자리고 일구구칠은 네 자리다. 자리가 늘면 한 값이 한 해만 가리킨다.
코드는 거꾸로 갔다. 다섯 자리가 넉 자리로 줄었다. 줄이면 값이 모자라니 어딘가에서 겹친다. 두 해 전 다섯 자리와 지금 넉 자리는 다른 체계이므로 겹칠 데가 없다고 여겨 왔다. 겹칠 데가 없으면 같은 수가 나올 수 없고, 나왔으니 겹친 데가 있다.
어디서 겹치는지를 셈으로 볼 수 없다. 두 체계의 배정표가 남아 있지 않다. 옛 체계는 정리 때 폐기됐다고 들었다. 들은 것은 근거가 아니지만 없는 것을 찾을 수는 없다.
한 시에 본사에 전화했다. 사흘에 세 번째다.
넉 자리 체계가 언제 생겼느냐고 물었다. 작년 칠월이라고 했다. 그 전 기록에 넉 자리가 있으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담당자가 이관 오류라고 했다. 이관할 때 코드를 새로 매겨 넣은 것이니 사례를 적어 보내라고 했다.
이관은 내가 했고 지침대로 원본대로 옮겼다고 했다. 담당자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럼 다른 사람이 손댄 것이 아니냐고 했다.
이 방에 등록할 수 있는 계정은 하나라고 했다. 담당자가 그러면 그 계정으로 누가 들어왔는지 접속 기록을 보라고 했다.
접속 기록은 나흘 전에 통째로 뽑아 놓았다. 구백열둘 행이다. 두 시부터 네 시까지 그 안에서 구십칠년 대장을 만진 줄을 찾았다.
조회한 줄은 셋이다. 구월 아흐레와 시월 초여드레 두 번이다. 셋 다 읽은 것이고 적은 것이 아니다.
기재한 줄은 없었다.
그러니 저 다섯 줄은 이 방의 계정으로 들어와 적은 것이 아니다. 담당자가 준 길도 막혔다.
기재 주체 불명이라고 적었다. 이 방에서 여덟 달 동안 여러 번 적은 말이다.
여덟 달 동안 이 방에서 내 넉 자리가 나온 자리를 세어 보았다. 넷이다. 유월에 게시판 표시명으로 나왔고 팔월에 인수인계 서류의 인수자 칸에 있었고, 팔월에 생겨난 색인 자리 셋 중 셋째에 있었고 오늘 다섯 줄에 있다.
앞의 셋은 다 이 방 안이다. 내가 넣었거나 내 계정이 넣었다. 오늘 것은 두 해 전 종이가 있는 자리다.
네 시 반에 삼층 사람이 내려와 서명을 받아 갔다. 나가면서 아까 위에서 내 이름을 찾는 전화가 왔는데 넉 자리로 불러서 누군지 몰랐다고 했다. 넉 자리로 부르면 나라고 했다. 그가 웃고 올라갔다.
올라간 뒤에 그 말을 적어 두었다. 이 방에서 나를 부르는 말은 넉 자리다. 종이에도 넉 자리고 화면에도 넉 자리다. 이름은 전화로 듣거나 복도에서 부르는 데 쓴다.
구십칠년 대장의 마지막 다섯 줄에 있는 것은 이름이 아니다. 앞의 이백열넷은 이름이다. 이름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고 넉 자리는 자리를 부르는 말이다. 다섯 줄은 사람을 안 적고 자리를 적었다.
자리를 적으면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누구든 그 줄이 맞는다.
이름을 적으면 그 사람이 있었어야 한다. 이름은 한 사람에게 붙고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줄이 틀린다. 자리는 다르다. 자리는 비었다가 채워지고 다시 빈다. 자리를 적은 줄은 그 자리가 있는 동안 늘 맞는다.
이백열넷은 이름이니 두 해 전에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다. 다섯은 자리니 그 자리가 있었다는 말뿐이다. 두 해 전에 이 방의 자리는 다섯 자리 코드로 불렸으므로 그 자리가 아니다. 그러면 저 다섯 줄이 적은 자리는 두 해 전에 없던 자리다.
없던 자리를 적은 줄은 그 자리가 생긴 뒤에 맞는다.
정정 사유를 못 찾겠다고 적은 것이 이레 만에 두 번째다.
여덟 달 동안 이 방에서 안 맞는 수를 여러 번 보았다. 안 맞으면 고칠 데가 있다. 오늘 다섯 줄의 넉 자리는 맞는다. 자리별로 맞고 체계상 맞고 서식상 맞다. 맞는데 있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것이 맞는 자리에는 고칠 데가 없다.
다섯 시 반에 그 다섯 줄을 마지막으로 열었다. 기재 시각 칸을 아직 안 보았다.
대장은 일자와 기재 시각을 따로 둔다. 종이에는 시각 칸이 없고 화면에는 있다.
다섯 줄의 시각이 다 새벽이었다.
두 시 오십일 분. 두 시 오십구 분. 세 시 정각. 세 시 사 분.
나흘 전에 접속 기록에서 본 넷과 같았다.
다섯째 줄의 시각은 세 시 십일 분이었다. 그것은 접속 기록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