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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칠년 열두째 달

December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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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열하루. 사흘을 두고 생각한 뒤에 열었다.

금요일 다섯 시 사 분 자 줄이 그대로 있었다. 조회 대상은 구십칠년 십이월 종합자료실 반출 대장이고 결과는 열람 완료다. 주말 사이에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아홉 시에 검색했다. 삼백셋이었다. 초닷새에 이백여든다섯이었으니 엿새에 열여덟이다. 하루 셋이다.

아홉 시 반에 열었다.

열렸다. 구월 아흐레에 안 열린 것과 같은 자리를 세 번 눌렀는데 이번에는 첫 번에 왔다.

표제가 「종합자료실 반출 대장」이고 기간이 구십칠년 십이월 초하루부터 십이월 열엿새까지다. 줄이 이백열아홉이다.

칸은 다섯이다. 일자, 자료 번호, 수령자, 수량, 기재자다. 지금 쓰는 대장과 칸이 같다. 서식은 안 바뀌었다.

기재자 칸이 이백열아홉 다 채워져 있었다.

열 시 반에 서고에 내려가 종이 대장을 꺼냈다. 칠월에 복사해 준 그것이고 구월 아흐레에 한 번 더 폈다.

십이월 쪽을 폈다. 줄을 세었다. 이백열아홉이었다.

일자를 맞췄다. 같았다. 자료 번호를 서른 줄쯤 맞춰 보았다. 같았다. 수령자 코드도 같고 수량도 같다.

기재자 칸만 달랐다.

종이는 여든둘이 채워져 있고 백서른일곱이 비어 있었다. 세는 데 사십 분이 들었다. 화면에는 빈 칸이 없다.

백서른일곱 칸에 다 기재가 있었다. 쉰 줄을 골라 읽어 보니 다 김도경이다.

종이의 여든둘도 김도경이다. 종이는 손글씨고 화면은 글자다. 화면에는 필체가 없다. 같은 이름인지 아닌지를 이름으로만 본다면 같다.

종이의 여든둘을 한 장씩 다시 보았다. 필체가 하나가 아니었다. 같은 이름을 적은 손이 둘이다. 하나는 끝을 눌러 맺고 하나는 흘려 놓는다. 여든둘 중에 눌러 맺은 것이 예순하나고 흘린 것이 스물하나다.

이름이 같고 손이 둘이면 두 가지다. 한 사람이 급할 때 흘려 쓴 것이거나 다른 사람이 그 이름을 대신 적은 것이다. 종이 위에서 둘은 같은 모양이다. 대장에는 누가 적었는지를 적는 칸이 없다. 기재자 칸에 이름이 있으면 그 이름이 적은 것으로 치기로 되어 있고, 그 치기가 서식이다.

열한 시 반부터 열두 시까지 그 백서른일곱을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를 두고 앉아 있었다. 쓸 말을 못 찾아서가 아니다. 쓸 말은 있다. 화면이 종이의 빈 칸을 채웠다고 적으면 된다. 적어 놓고 보면 여덟 달 동안 여러 번 적은 말이다.

여러 번 적은 말인데 오늘 것이 다르다. 여태 화면이 채운 것은 수였다. 조회수를 채웠고 색인 자리를 채웠고 카드를 채웠다. 수는 늘어난다. 늘어나는 것을 보면 늘었다고 적는다.

오늘 채워진 것은 빈 칸이다. 빈 칸이 채워지면 빈 칸이 줄어든다.

칠월에 빈 칸은 백서른일곱이었다. 구월 아흐레에도 백서른일곱이었다. 오늘 화면에는 없다. 아홉 달 동안 이 방에서 무엇이 줄어드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이다.

점심을 먹고 와서 칠월에 적어 둔 것을 찾아 읽었다.

빈 칸은 두 가지라고 적어 두었다. 적을 사람이 없어서 빈 칸과 적을 겨를이 없어서 빈 칸이다. 종이 위에서 둘은 같은 모양이므로 어느 쪽인지 못 가른다고 적었다. 급했던 달이라고 들었으니 겨를 쪽일 것이라고도 적었다.

셋째 가지가 있었다.

적을 사람이 아직 안 간 칸이다.

적을 겨를이 없어서 빈 칸이면 그 칸은 영영 빈다. 겨를은 지나가고 돌아오지 않는다. 적을 사람이 아직 안 간 칸이면 그 칸은 사람이 가면 채워진다.

그러면 두 해 전 종이가 오늘까지 기다렸다는 말이 된다. 기다렸다는 말이 서식에 없어서 안 적었다.

안 적고 나서 그 말을 한동안 들고 있었다. 기다린다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종이는 놓여 있는다. 놓여 있는 것과 기다리는 것은 밖에서 보면 같고 안에서는 다르다. 그 다름을 볼 자리가 나한테 없다.

다만 이 방에는 기다리는 것으로 되어 있는 종이가 하나 더 있다. 책상 아래 상자의 노트다. 마지막 장이 문장 중간에서 끊겨 있고, 받는 이 칸에 다음 기록 담당이라고 되어 있다. 그것을 내가 정월에 받았다. 그 노트는 내가 오기까지 기다렸다고 적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받는 이가 적혀 있으면 기다린 것이 되고, 받는 이가 없으면 놓여 있던 것이 된다.

구십칠년 십이월 대장의 빈 칸에는 받는 이가 안 적혀 있었다. 빈 칸이니 아무것도 안 적혀 있다. 그래서 여태 놓여 있던 것이었다.

두 시부터 세 시까지 줄을 훑었다. 십이월 초하루부터 차례로 보았다.

줄이 고르지 않았다. 초순은 하루에 열대여섯 줄이고 열흘이 넘어가면 줄어든다. 열나흘에 넷, 열닷새에 둘, 열엿새에 하나다.

열엿새 다음이 없었다.

서고에서 구십팔년 대장을 꺼내 첫 줄을 보았다. 정월 초닷새다.

십이월 열이레부터 정월 초나흘까지가 빈다. 열아홉 날이다.

연말이니 줄이 줄어드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삼층에서도 십이월 하순에는 청구가 안 온다. 다만 하루에 하나가 되고 그다음에 아예 없어지는 꼴은 청구가 줄어드는 꼴과 다르다. 청구가 줄면 이틀에 하나, 사흘에 하나로 뜸해진다. 이것은 열엿새에 하나 있고 그 뒤에 아무것도 없다.

기재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이렇게 된다.

세 시 반에 삼층 사람이 내려왔다. 서명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아까 내려간 김에 묻고 갈 것이 있었다고 했다.

묻고 갈 것을 듣고 나서 내가 물었다. 합병 전 자료실에 김도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지 아느냐고 했다.

그가 자기는 합병 뒤에 왔다고 했다. 이 층에 합병 전 사람이 몇 남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아는 데는 없다고 했다. 그가 왜 찾느냐고 물었다.

대장에 이름이 있다고 했다. 그가 그럼 인사부에 물어보라고 하고 올라갔다.

인사부는 구월 아흐레에 물었다. 합병 이후분만 수록하고 있다.

이 방에서 여덟 달 동안 물어볼 데가 하나씩 없어졌다. 전임자는 문장이 끊긴 노트로 남았고 명부는 정리 때 폐기됐고, 인사 조회에는 없고 층에는 사람이 없다. 남은 것은 대장뿐이다.

물어볼 데가 없어지는 것과 물을 것이 늘어나는 것은 같이 온다.

네 시부터 다섯 시까지 카드를 했다. 백육십 장을 했다.

다섯 시에 화면으로 돌아와 마지막 다섯 줄을 보았다. 열닷새 둘과 열엿새 하나와 그 앞의 둘이다.

다섯 줄의 기재자 칸에 이름이 없었다.

넉 자리 코드가 있었다.

다섯 다 같은 넉 자리였다. 나는 그 넉 자리를 종이에 적어 볼 필요가 없었다. 인수인계 서류의 인수자 칸에 있는 것이고 반출 대장에 하루에 몇 번씩 들어가는 것이다.

내 넉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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