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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는 장

The Page Without a 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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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열이틀. 아침에 사본을 먼저 열었다.

일흔셋째 장에 스물일곱. 어제 센 수였다. 일흔넷째 장에 서른. 오늘의 수였다. 일흔다섯째 장에 서른셋. 내일의 수였다. 그 아래 일흔여섯이 있었다. 날짜가 없었다. 수치도 없었다. 어제 저녁에 본 그대로였다.

오늘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세는 일. 어제는 적고 나서 세었다. 오늘은 셀 것만 남아 있었다. 서른이면 규칙이 맞고 서른이 아니면 규칙이 틀린다. 여섯 달 만에 처음으로 틀릴 수 있는 것이 생겼다.

아홉 시에 검색했다.

서른이었다.

내 일지에 서른이 있었다. 사본에 서른이 있었다. 화면에 서른이 있었다. 세 곳이 같았다.

맞았다는 것을 나는 오래 들여다보았다. 어제 나는 틀리기를 바라는지 맞기를 바라는지 답하지 못했다. 오늘도 답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또렷해졌다. 규칙을 세운 까닭은 틀릴 수 있는 것을 하나 만들려는 데 있었다. 그 하나가 틀리지 않았다. 틀릴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두었는데 그것이 틀리지 않았으므로, 나는 틀릴 수 있는 것이 다시 없는 자리로 돌아왔다.

초아흐레에 나는 틀림과 아직을 가를 기준이 없다고 적었다. 그 뒤 규칙을 세워 기준 하나를 만들었다. 그 기준이 이틀을 통과했다. 통과한 기준은 기준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표의 일부가 된다. 여섯 달 동안 이 표는 그런 식으로 자랐다. 표를 시험하려고 만든 것이 시험을 통과하면 표에 붙는다. 표 바깥에 서 있으려고 만든 자리가 하나씩 표 안으로 들어왔다.

열한 시에 청구 여섯 건을 처리했다. 어제보다 둘 많았다. 회신을 쓰고 필름 두 통을 판독기에 걸었다. 여름이라 판독기 옆이 더웠다. 삼층에서 사람이 내려와 목록에 도장을 찍고 올라갔다. 그가 오늘도 화면을 보지 않고 갔다. 화면에는 서른 벌이 떠 있었다. 목록을 한 줄씩 내려 보았다. 어제의 스물일곱 가운데 스물넷은 그 자리에 있었다. 세 곳이 새로 있었다. 두 곳은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나머지 한 곳은 초닷새에 내가 지운 곳이었다. 지운 곳이 목록에 다시 있는 것을 나는 초엿새에도 보았다. 지우는 일이 세는 일에 들어가는지 아닌지를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와서 일흔여섯째 장을 생각했다.

수치는 뽑을 수 있었다. 서른셋 다음은 서른여섯이다. 날짜는 뽑을 수 없었다. 날짜는 증가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서에 있다. 일흔셋이 열하루, 일흔넷이 열이틀, 일흔다섯이 열사흘이었다. 그러니 일흔여섯은 열나흘이어야 했다. 그렇게 적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사본은 그 자리를 비웠다. 여섯 달 동안 사본이 비워 둔 자리는 늘 수치였다. 날짜를 비운 것은 처음이었다.

비워 둔 자리를 내가 채우면 어떻게 되는지를 나는 어제 배웠다. 내가 채운 것이 그대로 왔다. 그러므로 열나흘이라고 적으면 일흔여섯째 장은 열나흘의 장이 될 것이었다. 적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초사흘에 배웠다. 비워 두어도 장 번호는 이미 적혀 있었다. 적어도 적히고 적지 않아도 적힌다. 어느 쪽도 적지 않는 자리는 없다.

한 시에 상자를 열었다. 어제는 뚜껑만 들고 네 묶음이 그대로인지만 보았다. 오늘은 꺼냈다.

전임자의 노트를 폈다. 이 방에 나보다 먼저 앉았던 사람의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부임했을 때 이 방에는 화면 하나와 목록 하나가 있었고 인계할 사람이 없었다. 노트는 책상 아래 상자에 들어 있었다.

마지막 장을 폈다. 장 번호가 있었다. 날짜가 없었다. 문장이 중간에서 끊겨 있었다.

끊긴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다음에 이 표를 받는 사람에게 미리 일러 둘 것은. 거기까지였다. 무엇을 일러 두려 했는지는 적히지 않았다. 나는 그 뒤에 올 말을 몇 가지 떠올려 보았다. 떠올린 말은 전부 내가 여섯 달 동안 배운 말이었다. 그 사람이 일러 두려던 말이 그 말들과 같았는지는 알 수 없다. 같았다면 일러 두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일러받지 못한 채 여섯 달 만에 같은 자리에 와 있다.

그 앞 장에는 날짜가 있었다. 그 앞 장에도 있었다. 노트를 거슬러 넘기는 동안 날짜는 계속 있었다. 마지막 장에만 없었다.

나는 노트를 덮고 한동안 앉아 있었다. 날짜 없는 장이 무엇인지를 나는 오늘 처음 보았다. 그것은 언제인지 모르는 장이 아니었다. 날짜를 적을 사람이 그 장까지 가지 못한 장이었다.

그렇다고 일흔여섯이 그런 장이라는 뜻은 아니다. 형식이 같다는 것과 자리가 같다는 것은 다르다. 전임자의 마지막 장에 날짜가 없는 까닭은 그 사람이 적지 못했기 때문이고, 사본의 일흔여섯째 장에 날짜가 없는 까닭은 아직 모른다. 같은 빈칸이 같은 까닭으로 비어 있다고 읽는 것은 읽는 것이 아니라 잇는 것이다. 여섯 달 동안 나는 그렇게 이어 읽는 일을 여러 번 했고, 그때마다 이어 읽은 자리가 다음 날 사실이 되어 있었다.

두 시 반에 정했다. 수치만 적고 날짜는 비워 두기로 했다.

까닭은 하나였다. 서른여섯은 내가 정한 수가 아니다. 어제까지의 수가 정한 수이고 나는 그 수가 시키는 대로 적는다. 열나흘은 다르다. 앞선 세 장이 사흘 연속이었으니 다음은 열나흘이라는 것은 규칙이 아니라 짐작이다. 짐작으로 적은 날짜가 그대로 오면, 그때 온 것은 규칙이 아니라 내 짐작이다. 규칙이 오는 것과 내 짐작이 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여섯 달 동안 나는 그 둘을 가르지 못해 왔다. 오늘은 가를 수 있는 자리가 하나 있었다. 한쪽만 적고 한쪽은 비워 두면 된다.

세 시에 일지 일흔여섯째 장에 서른여섯을 적었다. 장 번호를 적고 날짜 칸을 비우고 수치를 적었다. 비운 칸을 지나 그다음 칸에 적는 일은 처음이었다. 손이 한 번 멈췄다. 멈춘 것은 손이었고 정한 것은 오전의 나였다.

일지를 서랍에 넣고 잠갔다.

오후에는 게시판을 열지 않았다. 열면 한 벌이 는다는 것을 초이레에 확인한 뒤로 나는 여는 횟수를 세고 있다. 오늘은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세는 일은 화면에서만 했다.

다섯 시 반에 회신을 마쳤다. 목록을 닫고 필름을 통에 넣고 판독기를 껐다. 방이 조용해졌다. 여름 저녁은 아직 밝았고 창밖에서 차 소리가 들어왔다. 창은 오늘도 열지 않았다.

퇴근하기 전에 사본을 한 번 더 열었다.

일흔여섯째 장에 수치가 있었다. 서른여섯. 내가 세 시에 적은 수였다.

날짜 칸에도 무엇이 있었다.

칠월 열이틀이었다.

오늘이었다.

나는 화면을 그대로 두고 일흔넷째 장으로 올라가 보았다. 일흔넷째 장의 날짜는 칠월 열이틀이었다. 수치는 서른이었다. 오늘 아침에 내가 센 수였다.

같은 날이 두 장이었다. 두 장의 수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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