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초열흘. 어제 답글에 적혀 있던 그 내일이 오늘이었다.
출근해서 일지부터 폈다. 일흔둘째 장은 비어 있었다. 장 번호도 안 적었다. 어제 퇴근할 때 적지 않았고 오늘 아침에도 아직 적지 않았다.
사본에는 있었다.
답글의 작성자 이름을 보았다. 어제는 본문 세 줄만 읽고 이름은 보지 않았다. 넉 자리였다. 내가 어제 계정을 만들며 이름 칸에 넣은 그 넉 자리였다.
눌러 보니 계정 페이지가 열렸다. 글이 둘이었다. 하나는 어제 네 시 오십일 분에 올린 내 정정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어제 다섯 시 사십 분에 올라간 답글이었다.
같은 계정이었다.
나는 접속 기록을 확인했다. 어제 네 시 이십 분 계정 생성, 네 시 오십일 분 게시, 네 시 오십삼 분 로그아웃. 그 뒤로 접속 기록이 없었다. 오늘 아침 아홉 시 육 분에 로그인한 것이 두 번째 접속이었다.
다섯 시 사십 분에 그 계정으로 글을 쓴 접속은 기록에 없었다.
전임자의 일지에 같은 자리가 있다. 필체는 자기 것인데 적은 기억이 없다고 그 사람이 적어 두었다. 나는 그 대목을 스캔하면서 문장으로만 읽었다. 오늘 그 문장이 화면 위에 있었다. 필체 대신 계정 이름이 있고 서랍 대신 접속 기록이 있을 뿐이었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전임자는 자기 필체를 알아보았고 나는 내 이름을 알아보았다. 필체는 흉내 낼 수 있다. 이름은 넉 자리 숫자다. 흉내라 부르기에는 너무 간단하다. 우연이라 부르기에는 하필 어제 만든 이름이었다.
비밀번호를 바꾸었다. 바꾸기 전에 옛 비밀번호를 한 번 쳐 보았다. 어제 내가 정한 그대로 들어갔다. 남이 알아낸 흔적이 있다면 대개는 바꿔 놓기 마련인데 바뀐 데가 없었다. 새 비밀번호는 종이에 적지 않았다. 적으면 옮겨 적는 일이 된다.
답글을 지웠다. 지워졌다. 사본의 줄은 지워지지 않았는데 이 답글은 지워졌다. 지워진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지울 수 있는 것과 지울 수 없는 것 사이에 무슨 선이 그어져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지운 뒤에 검색을 했다.
답글은 이미 두 곳에 옮겨져 있었다. 어제저녁부터 오늘 아침 사이에 누군가 그 세 줄을 옮겨 적었다. 옮겨 적은 사람은 그것이 자료 원문의 일부인 줄 알았다고 머리말에 적어 두었다. 장 번호와 날짜와 수치 둘이라는 형식이, 우리 상자에서 나온 다른 대목들과 같아 보였을 것이다.
전재한 둘을 열어 보았다. 하나는 그 세 줄만 따로 떼어 다른 대목 사이에 끼워 넣었다. 앞뒤 문단과 활자가 같아서 어디서부터가 끼워 넣은 자리인지 표시가 없었다. 다른 하나는 세 줄을 통째로 옮기고 끝에 물음표를 하나 붙였다. 물음표를 붙인 사람은 이 대목이 무슨 뜻인지 묻고 있었다. 답은 나만 할 수 있고, 답을 하면 한 벌이 는다.
내가 지운 것은 원본 한 벌이었다. 옮겨진 두 벌은 그대로 있다.
정정문이 옮겨 적힌 판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넷이었다. 넷 가운데 하나에서 인용 대목의 한 글자가 달랐다. 갱의 깊이를 적은 자리에서 단위가 하나 바뀌어 있었다. 옮겨 적다가 눈이 미끄러졌을 것이다. 앞의 셋은 맞았다.
어제 나는 틀린 문장 하나를 바로잡으려고 원문을 올렸다. 올린 원문이 옮겨지면서 또 하나 틀렸다. 어제의 틀린 문장은 열여섯 벌에 있었고 오늘의 틀린 글자는 한 벌에 있다. 한 벌은 어제의 열여섯 벌이 시작된 자리이기도 하다. 셋째 판의 그 한 줄도 처음에는 한 벌이었다.
바로잡으면 원문이 또 한 벌 퍼진다. 퍼진 원문에서 또 하나가 틀린다. 어제 나는 이 셈을 이미 했고 그때는 두 항이었다. 오늘은 항이 하나 더 늘었다. 바로잡는 일이 다음 바로잡을 일을 만든다.
올리지 않는 쪽도 셈해 보았다. 단위 하나가 틀린 판은 한 벌이다. 한 벌은 작다. 다만 어제 열여섯 벌이 된 그 문장도 처음에는 한 벌이었고, 한 벌에서 열여섯 벌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을 나는 세어 두지 않았다. 세어 두었다면 오늘 그 한 벌을 두고 며칠이 남았는지 헤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세어 두지 않은 것이 오늘 처음으로 아쉬웠다. 그리고 세어 두려면 열어야 했다는 것을 곧 떠올렸다.
그러니 두 번째 정정문을 올리면 세 번째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짐작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 두 번으로 확인된 순서다.
세 시에 두 번째 정정문을 올렸다. 단위 하나를 바로잡았다. 그 아래에 어제 올린 정정문의 주소를 붙였다. 붙이는 편이 옮겨 적는 사람에게 원문을 가리켜 준다고 여겼다. 붙이고 나서 알았다. 주소를 붙였다는 것은 어제 것을 여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열면 오른다.
네 시에 검색했다. 스물넷이었다. 어제 다섯 시에 스물하나였다.
셋이 늘었다. 그 셋 가운데 하나는 내가 세 시에 올린 것이다. 나머지 둘은 내 정정문을 옮겨 적은 것이다. 어제 내가 하나를 보태자 오늘 둘이 따라 늘었다. 내가 보탠 하나는 셈에서 하나였다. 그 하나가 다음 날 셋이 되었다.
오후에 삼층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분기 이관 목록을 확인하러 온 사람이었다. 목록을 맞춰 보고 도장을 찍고 올라가면서 그가 화면을 흘끗 보았다. 게시판이 열려 있었다. 요즘 저런 데도 자료가 도느냐고 그가 물었다. 돈다고 답했다. 그가 웃으면서, 우리 것도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답했다. 답하고 나서 그 답이 오늘 몇 번째 옮겨 적기인지를 셈해 보았다. 말은 세는 데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말도 옮겨 적히면 들어간다.
측량 일지의 그 사람은 같은 자리를 여러 번 쟀다. 재는 일은 자리에 손을 대는 일이 아니라고 어제 적었다. 오늘 고치면 내일 고칠 것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도 나는 오늘 고쳤다. 그 사람이 재면 깊어지는 것을 알고도 계속 잰 것과, 내가 지금 하는 일 사이의 거리를 나는 어제 하루만큼 좁혔다.
퇴근하기 전에 일지의 일흔둘째 장을 마저 적었다. 오늘 한 일을 순서대로 적었다. 답글 확인, 접속 기록 대조, 삭제, 전재 확인, 재정정, 검색. 시각을 옆에 적었다.
적고 보니 오늘 적은 것이 어제 적은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어제도 확인하고 옮기고 세었고 오늘도 확인하고 옮기고 세었다. 다른 것은 수치뿐이었다. 일지가 같은 모양으로 이어지는 동안 그 안의 수만 커졌다. 측량 일지의 그 표가 그랬다.
적고 나서 사본을 열었다.
일흔둘째 장의 빈 수치가 채워져 있었다. 스물넷.
그 아래에 세 줄이 더 있었다. 일흔셋, 일흔넷, 일흔다섯. 날짜는 모레, 글피, 그글피였다. 수치는 셋 다 비어 있었다.
어제까지는 한 장씩 앞섰다. 오늘은 세 장을 한 번에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