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초아흐레. 사본을 먼저 열었다.
일흔째 장의 빈 수치가 채워져 있었다. 스물.
나는 세러 가지 않았다. 대신 종이에 스물이라고 적고 그 밑에 시각을 적었다. 오전 아홉 시 십이 분. 이번에는 순서를 내가 잡아 보기로 했다. 적힌 것을 보았고 아직 세지 않았다. 세지 않은 동안은 그 숫자가 맞는지 틀린지 아무도 모른다. 모르는 상태를 얼마나 붙들 수 있는지가 이번에 내가 재려는 것이었다.
두 시간을 붙들었다. 그동안 청구 일곱 건을 처리했다. 필름 두 통을 판독기에 걸었고 등록번호를 대장에 옮겼다. 옮기는 동안 손은 평소와 같았다. 열한 시가 지나면서 종이에 적어 둔 스물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종이를 뒤집어 놓았다. 뒤집어 놓으니 숫자가 있는 쪽을 알고 있다는 것만 남았다.
그다음 검색을 했다. 유월과 같은 검색어, 같은 순서로.
열여덟 곳이었다.
스물이 아니었다. 나는 그 화면을 한참 보았다. 처음이었다. 사본에 적힌 수와 내가 센 수가 어긋난 것은 여섯 달 만에 처음이었다.
점심때까지 나는 안도라고 부를 만한 것을 느꼈다. 어긋났다는 것은 그 숫자가 미리 안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누군가 어림으로 적었거나 잘못 세었거나 부풀렸을 것이다. 부풀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여섯 달 동안 맞아 온 것이 우연이었다면 오늘 어긋난 것은 우연이 끝난 자리다.
두 시에 다시 검색했다.
스물이었다.
늘어난 둘은 오후에 올라온 것이었다. 하나는 열한 시 오십 분, 하나는 열두 시 사십 분. 내가 열여덟을 센 것이 열한 시 십사 분이었다.
어긋난 것이 아니었다. 아직이었다.
나는 그것을 종이에 적었다. 적고 나서 한참 보았다. 틀렸다고 보이는 순간은 있었다. 다만 그 순간이 틀림이 아니라 아직이었다. 아직과 틀림을 가르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를 정해야 하고, 그 기한을 정할 근거가 내게 없다. 오늘 저녁에 스물하나가 되면 스물도 틀린 것이 되고, 내일 스물둘이 되면 스물하나도 틀린 것이 된다. 어느 수를 적어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지나가기 전까지는 아직이다.
그러니 이 표는 틀릴 수 없다. 틀릴 수 없는 표는 맞는 표가 아니다.
오후에 나는 열넷 중 셋째 판을 다시 열었다. 유월에 출처를 확인하지 못한 그 판이다. 문단이 나뉜 자리가 앞의 것들과 달랐고 줄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줄이 이제 스물 중 열여섯에 있었다.
처음 올린 열셋에는 없던 줄이다. 셋째 판에 한 번 들어갔고 그 뒤로 옮겨 적은 쪽마다 따라 들어갔다. 옮겨 적는 사람은 원본을 안 본다. 앞사람의 글을 본다. 앞사람의 글에 그 줄이 있으면 그 줄까지 옮긴다.
내용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측량 일지 대목에 한 문장이 더 붙어 있다. 그 사람이 마지막 측정 뒤에 갱을 떠났다는 문장. 우리 상자의 일지에는 그런 문장이 없다. 그 사람은 떠나지 않았다.
열여섯 벌 가운데 여섯에는 그 문장 아래 짧은 감상이 달려 있었다. 다행이라는 말이 세 번 나왔다. 한 사람은 그 대목에서 처음으로 숨을 쉬었다고 적었다. 떠났다는 문장이 있으면 이야기가 거기서 닫힌다. 없으면 닫히지 않는다. 닫히는 쪽이 옮겨 적기 쉽다.
원본은 내 책상 아래 상자에 있다. 상자는 목록에 없고 목록에 없으니 아무도 찾지 않는다. 바깥에 있는 스물 벌 가운데 원본을 본 사람은 없다. 원본을 본 사람은 나 하나다.
여섯 달 동안 나는 자료를 관리했다. 관리라는 말에는 틀린 것을 바로잡는 일이 들어 있다.
정정하려면 원문을 적어야 한다.
이 한 줄을 적기까지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게시판에 정정을 올리는 일은 원문의 그 대목을 그대로 옮겨 적어 나란히 두는 일이다. 옮겨 적은 판이 사진 판보다 더 자란다는 것은 유월에 내가 적어 두었다. 그러니 정정문은 자료를 바로잡는 글이면서 동시에 자료를 한 벌 더 늘리는 글이다.
바로잡지 않으면 그 문장은 계속 퍼진다. 바로잡으면 원문이 한 벌 더 퍼진다.
두 문장을 나란히 놓고 나는 어느 쪽이 덜 늘리는지를 셈해 보려 했다. 셈이 되지 않았다. 셈이 되려면 늘어나는 속도를 알아야 하고 속도를 알려면 세어야 하고 세면 오른다.
네 시에 나는 계정을 만들었다.
부임한 뒤로 나는 바깥에 글을 올린 적이 없다. 사내망 등록본까지가 내 일이었다. 등록본은 사번으로 들어가고 사번은 내 것이다. 바깥 게시판은 사번이 없다. 이름을 하나 지어 넣어야 한다.
이름 칸 앞에서 손이 멈췄다. 성을 넣으면 사람 이름이 되고 사람 이름을 넣으면 그 이름이 스물한 벌 가운데 하나에 붙는다. 자료실이라고 넣으면 상자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는 셈이 된다. 아무것도 안 넣으면 계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는 자료실 코드 넉 자리를 이름으로 넣었다.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넉 자리를 치고 나서 나는 그 넉 자리가 전임자의 마지막 일지에서 받는 이 칸에 앉아 있던 자리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지우지 않았다.
정정문을 썼다. 원문의 그 대목을 옮겨 적고 그 아래에 우리 소장본에는 이 문장이 없다고 적었다. 소장처는 밝히지 않았다. 밝히면 상자를 찾는 사람이 생긴다.
올리기 전에 한 번 더 읽었다. 내 글은 원문 인용이 절반이었다. 절반은 옮겨 적은 것이다.
올렸다.
다섯 시에 검색했다. 스물하나였다.
늘어난 하나는 내 것이었다.
여섯 달 동안 나는 세는 사람이었다. 오늘 나는 세어지는 쪽에 한 줄을 보탰다. 스물하나 중 하나가 내 손에서 나갔고 그 하나에는 내가 지은 이름이 붙어 있다.
측량 일지의 그 사람은 같은 자리를 여러 번 쟀다. 재면 깊어지는 것을 알면서 계속 쟀다. 나는 그 사람을 세 번 읽었고 세 번째에 그가 왜 그만두지 않았는지를 알았다고 적었다. 알았다고 적은 다음 날 나는 그가 한 일을 했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 그 사람은 재기만 했다. 재는 일은 자리에 손을 대는 일이 아니다. 나는 오늘 손을 댔다.
퇴근하기 전에 사본을 열었다.
내 정정문 아래에 답글이 하나 붙어 있었다.
본문은 세 줄이었다. 첫 줄에 장 번호가 있었다. 일흔둘. 둘째 줄에 날짜가 있었다. 오늘 날짜가 아니라 내일 날짜였다. 셋째 줄에 수치가 둘 있었다. 하나는 스물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