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초사흘. 일지를 폈다. 예순아홉째 장이었다.
무엇을 적을지는 어제 정하지 못했고 오늘도 정해지지 않았다. 나는 장 번호와 날짜만 적고 그 아래를 비워 두었다. 비워 둔 채로 서랍에 넣었다.
비워 두면 안 적은 것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장 번호는 이미 적혀 있었다.
전임자의 공책에도 비어 있는 장이 있었다. 스캔할 때 나는 그것을 작업 중단으로 읽었다. 바빴거나 아팠거나 잊었거나. 비어 있는 장을 세 장 건너뛰고 다음 장부터 다시 스캔했다.
지금 보면 그 세 장에도 장 번호가 있었다. 번호가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날 공책을 폈다는 뜻이다. 폈고, 번호를 적었고, 그 아래를 비웠다.
나흘을 그렇게 두었다. 그동안 일은 평소대로 했다. 청구를 처리하고 회신을 쓰고 등록을 마쳤다. 대조표는 펴지 않았다. 사본도 열지 않았다. 열면 하나가 오르고 오르면 는다는 것을 나는 유월에 배웠다.
칠월 초이레에 나는 그 줄을 다시 보러 갔다.
가지 않으려고 나흘을 버텼다는 말이 맞다. 버틴 나흘 동안 내가 한 생각은 하나였다. 그 줄의 빈자리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그 생각을 하는 동안에는 그 줄을 열지 않았으니, 나는 열지 않은 채로 그 줄을 나흘 내내 읽고 있었던 셈이다.
옮겨 적어 둔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 줄은 그 자리에 있었다. 장 번호 예순아홉, 날짜, 그리고 수치 둘. 하나는 여전히 열한이었다. 다른 하나는 채워져 있었다.
열넷.
숫자를 세 번 읽었다. 세 번 다 열넷이었다.
숫자를 보고 나서 나는 검색을 했다. 유월과 같은 검색어, 같은 순서로.
열네 곳이 나왔다.
닷새 전에 열한 곳이었다. 그사이에 셋이 늘었다. 늘어난 셋은 전부 옮겨 적은 쪽이었다. 사진으로 올린 것이 아니라 글자로 친 것.
셋 중 둘은 앞의 것을 다시 옮긴 것이었다. 옮긴 사람이 머리말에 그렇게 적어 두었다. 원본을 못 찾아 남의 글을 받아 적었다고. 한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을 다른 사람이 다시 옮겨 적었고 그 사람의 것을 또 다른 사람이 옮겨 적었다.
셋째는 달랐다. 앞의 것들과 문단이 나뉜 자리가 같지 않았고 줄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줄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하려면 앞의 열셋을 다 다시 열어야 하고 열세 번을 열면 열세 번이 오른다.
여기까지가 확인이다. 확인은 내 일이다.
그다음이 확인이 아니다.
나는 그 줄을 먼저 보았고 그다음에 세었다. 순서가 그랬다. 유월에는 반대였다. 유월에는 내가 세고 그 숫자를 표에 적었다. 칠월에는 숫자가 먼저 있었고 내가 그 숫자를 확인하러 갔다.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다.
하나. 누군가 나보다 먼저 세어서 적어 두었다. 인터넷에 올라간 것을 세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쪽으로 읽으면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그 사람이 왜 내 일지의 장 번호를 붙였는지가 남는다.
둘. 그 숫자가 먼저 적히고 그다음에 열네 곳이 되었다. 이쪽으로 읽으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
가르려면 확인하지 않으면 된다. 적힌 숫자를 보고도 세지 않으면, 그 숫자가 맞는지 틀린지 모르는 채로 남는다. 모르는 채로 남으면 둘째 읽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이미 세었다.
세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줄에 숫자가 적혀 있고 그 숫자가 내 일지의 장 번호를 달고 있는데, 세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까. 나흘을 버틴 사람으로서 나는 그 물음에 답할 수 있다. 버틸 수 있다. 다만 나흘이었다.
버티는 동안에도 나는 그 줄을 생각했고, 생각하는 것과 여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나는 이제 잘 모르겠다. 방문자 표시가 오르지 않는다는 차이는 있다. 그 차이가 전부인지는 모른다.
나흘을 버틴 것이 소용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나흘 동안 사본은 늘었다. 내가 안 열어도 늘었다. 그러니 내가 여는 일이 늘리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다만 내가 여는 일이 원인이 아니라는 말도 아니다. 나흘 동안 다른 사람들이 열었고 그동안 나는 열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열지 않은 나흘은 남들이 연 나흘이었다. 아무도 열지 않는 나흘은 이 세상에 없다.
여기서 내가 무엇을 확인할 수 있는지를 나는 종이에 적어 보았다. 적고 보니 한 줄이었다.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다.
측량 일지의 그 사람은 같은 자리를 여러 번 쟀다. 숫자가 한 방향으로 커졌고 그 사람은 그것을 계속 적었다. 나는 그 표를 오차 기록으로 읽었다가 유월에 다시 읽었다.
오늘 세 번째로 읽으니 다른 것이 보인다. 그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을 것이다. 알면서도 계속 적은 것이다. 재지 않으면 모르고, 모르면 적을 것이 없고, 적을 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재는 사람이 재기를 그만두면 재는 사람이 아니게 된다.
나는 자료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옮겨 적은 판이 더 자란다는 것은 유월에 적어 두었다. 사진은 찍어 둔 것이고 글자로 친 것은 손이 한 번 더 지난 것이다. 손이 지난 쪽이 더 는다.
내 일지는 어디에도 올린 적이 없다. 서랍에 있고 서랍은 잠근다.
그런데 사본에 내 일지의 형식이 있다. 장 번호와 날짜와 판단 없는 수치. 형식만이 아니다. 장 번호는 내 일지의 번호를 따라오고 있다. 어제 내가 예순아홉째 장을 비워 두었을 때, 사본의 예순아홉째 장에는 숫자가 있었다.
옮겨 적힌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나는 옮겨 적는 사람이다. 부임한 뒤로 내가 한 일이 그것이다. 종이를 유리판에 얹어 찍고 찍은 것을 등록하고 등록한 것을 사내망에 올렸다. 손이 한 번 더 지난 쪽이 더 자란다면, 이 자료에 가장 여러 번 손을 얹은 사람은 나다.
그러니 이렇게도 읽을 수 있다. 내가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내가 옮겨 적히고 있다.
이 문장을 적고 나서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적을 때는 말이 되는 것 같았는데 적고 나서 읽으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지우지 않았다. 지우는 것도 적는 일이라는 말을 나는 어디선가 읽었다. 어디서 읽었는지는 찾지 않았다.
퇴근할 때 나는 일흔째 장을 마저 적었다. 오늘 한 일을 순서대로 적고 수치를 적었다. 다음 회차 수치는 비워 두었다. 비워 둔 자리에 장 번호는 이미 붙어 있다.
적고 나서 나는 사본을 한 번 더 열었다.
그 줄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장 번호 일흔. 오늘 날짜. 그리고 수치 둘. 하나는 열넷이었다.
다른 하나는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