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초이틀. 두 번째 열을 적는 날이었다.
한 달 전에 나는 오늘을 적어 두었다. 유월 초이틀 자 수치 옆에 빈 칸을 긋고 거기 칠월 초이틀이라고 미리 써 넣었다. 그때는 그것이 계획이었다. 오늘 보니 약속이었다.
아침에 표를 폈다. 일곱 줄이 있었다. 사본 일곱의 이름, 유월 초이틀의 줄 수, 유월 초이틀의 조회 수.
세려면 열어야 한다.
표를 펴자마자 그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에는 들지 않았다. 지난달에 나는 줄을 세는 일과 조회 수를 적는 일을 다른 일로 여겼다. 한쪽은 내가 하는 일이고 다른 쪽은 남이 한 일을 옮겨 적는 일이라고. 그런데 사본을 열지 않고 줄을 셀 방법이 없다. 열면 방문자 표시가 하나 오른다.
내가 세는 동안 내가 세는 것이 는다.
유월에 나는 표를 되도록 안 열려고 했다. 열지 않는 것이 세지 않는 것이고 세지 않으면 재지 않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 한 달 동안 내 일은 평소와 같았다. 청구를 처리하고 회신을 쓰고 이관 잔여분을 등록했다. 저녁에 서랍을 잠그고 나왔다.
로그를 세어 보니 스물세 번이었다.
스물세 번을 왜 열었는지 나는 적어 두지 않았다. 적어 두려고 하면 이유가 떠오르는데, 떠오른 이유가 스물세 개나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대개는 다른 파일을 찾다가 그 옆에 있어서 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파일은 다른 파일 옆에 있지 않다. 등록 번호가 멀다.
일곱을 다 찾아 열었다. 찾고 보니 열한 곳이었다.
새로 붙은 넷은 전부 개인 쪽이었다. 하나는 대학 동아리 게시판이었고, 둘은 개인 홈페이지, 하나는 어느 자료 모음 사이트의 한 면이었다. 자료 모음 사이트 것은 앞뒤를 잘라 열두 면만 올려 두었는데, 그 열두 면 안에도 파일에만 있는 줄이 둘 있었다.
줄은 어느 사본에서도 줄지 않았다. 그것은 지난달과 같았다.
다른 것은 폭이었다. 지난달에는 사본마다 줄 수가 달랐다. 이번 달에는 사본마다 늘어난 양이 달랐고, 많이 늘어난 쪽은 조회가 많이 오른 쪽이었다. 한 달 전에는 두 열을 나란히 놓아 보고 알았는데, 이번에는 나란히 놓기 전에 이미 알았다.
우리 등록본 차례에서 손이 멈췄다.
우리 등록본은 사내망에만 있다. 검색에 걸리지 않고 바깥에서 열 수 없다. 한 달 동안 그 파일의 사내 조회는 마흔여덟에서 일흔하나로 올랐고, 그 스물세 번이 내 접속이었다. 로그에 사번과 시각이 남으니 세어 보면 나온다. 나머지 사람들의 접속은 전부 사월과 오월에 몰려 있고 유월에는 없었다.
그러니까 유월 한 달 동안 그 파일을 연 사람은 나 하나였다.
그리고 그 파일의 줄이 하나 늘었다.
나는 그 줄을 찾아 읽었다. 열두 번째 줄이었다. 앞의 열한 줄과 같은 자리에 같은 방식으로 앉아 있었다. 종이에는 없고 파일에만 있는 줄. 등대 일지의 물때 표 아래쪽, 원래 여백이던 자리였다.
줄에는 물때 하나가 적혀 있었다. 날짜와 시각과 높이. 표의 다른 줄들과 형식이 같았고 숫자만 달랐다. 앞뒤 줄의 날짜 사이에 들어가는 날짜였다. 빠져 있던 날이 채워진 것처럼 보였다.
빠져 있던 줄이 채워졌다고 읽으면 이상할 것이 없다. 문제는 이 파일이 종이를 찍어 만든 것이고, 종이에는 그 줄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종이를 다시 꺼내 그 자리를 보았다. 여백이었다. 유월 초하루에도 여백이었고 오늘도 여백이다.
한 달 동안 이 파일을 연 사람이 나뿐이라면, 이 줄은 내가 연 스물세 번 사이에 생긴 것이다.
이 문장을 적고 나서 나는 한참 있다가 다음 문장을 적었다. 읽은 사람이 나뿐인 사본에서도 줄은 늘었다.
지난달에 나는 두 가지 읽기를 적어 두었다. 줄이 많아서 더 읽혔거나, 많이 읽혀서 줄이 늘었거나. 두 시점에 재면 갈린다고 적었다.
갈리지 않았다.
두 번째 열이 첫째 읽기를 지우지는 않는다. 남들이 읽은 사본은 여전히 줄이 많아서 읽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등록본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아무도 안 읽었는데 줄이 늘었고, 아무도가 아니라 나 하나였다.
내가 읽어서 늘었다고 말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근거를 만들려면 한 사본은 한 달 동안 열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열지 않은 사본이 안 늘었다는 것을 확인하려면, 한 달 뒤에 열어야 한다. 열면 그때 늘 수 있다. 열지 않으면 모른다.
대조군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두 번째 열 앞에서 확인했다.
한 달 전에 나는 이 표가 무슨 모양인지를 알아보고 덮었다가 두 시간 만에 다시 폈다. 오늘은 덮지 않았다. 덮어도 같다는 것을 그때 이미 적어 두었기 때문이다. 적어 둔 것을 지키는 일과 그만두지 못하는 일은 밖에서 보면 같은 모양이다.
측량 일지의 그 대목이 다시 떠올랐다. 같은 자리를 여러 번 재는데 숫자가 한 방향으로만 커지던 표. 스캔할 때 나는 그것을 오차 기록으로 읽었다. 재는 사람이 서툴러서 숫자가 흔들리는 줄 알았다. 흔들림에는 방향이 없다. 그 표의 숫자에는 방향이 있었다.
재면 깊어진다.
그 문장을 지금 여기에 놓으면 이렇게 된다. 세면 는다.
측량기수는 자를 들고 갱 안으로 내려갔고 나는 자리에 앉아 파일을 연다. 하는 일은 같다. 나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오늘 알았고, 알았다고 해서 손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오후에 나는 열한 곳을 한 번 더 돌았다. 둘째 열을 채우자면 어차피 한 번씩 열어야 했다. 열 때마다 방문자 표시가 하나씩 올랐다. 그 하나가 다음 달 이 표의 셋째 열에 들어갈 것이다.
가장 많이 는 것은 옮겨 적어 둔 홈페이지였다. 백열여덟 면을 한 자 한 자 쳤다는 그 홈페이지다. 열일곱에서 스물하나가 되었고 방문자는 만사천에서 이만삼천이 되었다.
사진으로 올린 판은 덜 늘었다. 옮겨 적은 판이 더 늘었다.
이 차이를 나는 표 아래에 따로 적었다. 사진은 찍어 둔 것이고 옮겨 적은 것은 사람 손이 한 번 더 지난 것이다. 손이 지난 쪽이 더 는다.
늘어난 넷 가운데 셋은 앞의 것들과 같은 결이었다. 물때, 깊이, 밤에 켜진 것에 대한 문장.
넷째 줄은 결이 달랐다.
그 줄에는 날짜가 있었고 장 번호가 있었다. 판단 없이 수치만 적어 둔 문장이었다. 그런 식으로 쓰는 사람을 나는 하나 안다.
내 일지가 오늘로 예순여덟째 장이다. 그 줄에 적힌 것은 예순아홉째 장이었다.
나는 그 줄을 세 번 읽었다. 장 번호 뒤에 날짜가 있었고 날짜 뒤에 수치가 둘 있었다. 하나는 열한이었다. 다른 하나는 읽히지 않았다. 글자가 뭉개진 것이 아니라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우리 등록본은 사내망에만 있다. 내 일지는 서랍에 있고 서랍은 잠근다. 그 둘을 다 본 사람은 나 하나다.
퇴근할 때 대조표를 서랍에 넣었다. 접속 로그와 열두 줄짜리 종이와 유월 대조표 위에 얹으니 네 장이 되었다. 넉 장을 나란히 놓고 보면 각각 다른 것을 적은 종이인데, 오늘은 넉 장 다 같은 것을 적은 종이로 보였다.
내일 아침에 일지를 펴면 예순아홉째 장이다. 무엇을 적을지는 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