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등명기(燈明器)의 심지를 고르게 다듬는 일로 그날의 해도 저물었다. 불꽃은 손끝의 길이만큼 자라났다가 다시 가라앉았고, 그 위로 회전 렌즈가 놋쇠 태엽에 감겨 천천히 돌았다. 빛은 일정한 간격으로 검은 바다를 한 번씩 쓸고 지나갔다 — 십이 초에 한 번, 늘 같은 자리에서. 등탑 아래로는 섬의 갯바위가 어둠에 잠겨 있었고, 그 너머로는 물의 표면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등명대(燈明臺)의 난간을 짚고 서서, 빛이 돌아 나가는 그 단조로운 호(弧)를 헤아렸다. 헤아리는 일에는 어떤 위안이 있었다. 섬에 닿은 지 다섯 달, 사람의 말을 입에 올린 것이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았으므로.
그 단조로움을 깨는 것이라고는 발밑에서 올라오는 물소리뿐이었다. 밀물은 정한 시각에 갯벌을 덮어 왔다가, 정한 시각에 물러갔다. 바다는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 적어도 황해의 물때는 그러했다. 사리에는 멀리까지 차오르고, 조금에는 갯바위의 검은 등을 드러냈다. 나는 그 들고 남을 들으며, 이 물의 규칙성이야말로 무인도의 유일한 동행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등대수의 직무 중 하나는 물때를 매 당직마다 기록하는 일이다. 등대국이 내려보낸 인쇄된 물때표가 있었고, 나는 실제 물의 높이를 그 옆에 적어 대조했다. 표는 등탑 안벽에 못 박혀 있었는데, 내가 부임하기 전부터 걸려 있던 전임자의 것이었다. 전임자가 누구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인계는 본토에서 서류 한 장으로 끝났고, 그가 남긴 것이라고는 그 표와, 심지를 너무 짧게 깎는 버릇이 밴 가위 한 자루뿐이었다.
그날 밤, 다음 당직의 물때를 확인하려 표 앞에 등을 가져다 댔을 때, 나는 인쇄된 칸들 사이에서 손으로 적어 넣은 한 줄을 보았다.
그것은 활자가 아니었다. 표의 맨 아래, 본래는 비어 있어야 할 여백에, 누군가 잉크로 한 칸을 덧그려 넣고 시각을 적어두었다. 자정과 새벽 사이의 어느 시각이었다 — 그러나 그날은 그믐이었고, 달이 없는 밤에는 그런 물때가 들 수 없었다. 사리도 조금도 아닌, 어느 표에도 없는 물때. 그 옆 여백에는 작은 글씨로 한마디가 적혀 있었다.
'열세 번째 물때(第十三潮).'
손끝으로 그 글자를 더듬는 순간, 등골을 타고 얼음장 같은 냉기가 스쳤다. "구월의 등탑이 으레 이렇게 차갑지,"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못 박힌 표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그 한기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표가 거기 있어서 차가운 게 아니라 — 이미 차가운 자리에 표가 걸린 것뿐이지, 라고 나는 덧붙였다.
전임자는 심지를 너무 짧게 깎는 사람이었다. 물때표에 장난을 적어둘 만큼 한가하기도 했을 것이다. 무인도의 밤은 길고, 길면 사람은 무엇이든 적게 된다.등명기는 영국 글래스고에서 만들어져 청국(淸國)을 거쳐 이 섬에 닿은 물건이었다. 렌즈를 감은 놋쇠 받침에는 제작소의 명패가 새겨져 있었는데, 나는 다섯 달 동안 그것을 닦기만 했을 뿐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날따라 등불을 가까이 대자, 받침에 새겨진 라틴어 한 줄이 떠올랐다.
LUMEN SUPER ABYSSUM CUSTODIT'심연 위의 빛을 지킨다' — 등대의 표어로는 마땅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빛이 무엇으로부터 심연을 지키는지, 아니면 심연으로부터 빛을 지키는지, 그 라틴어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표에 적힌 그 시각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직무에 충실한 까닭이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일렀다. 어느 표에도 없는 물때가 들지 않음을 확인해, 전임자의 낙서를 한 줄 그어 지우기 위함이라고.
자정이 지나고, 인쇄된 표의 간조(干潮) 시각에 물은 정확히 물러갔다. 갯벌이 등불 빛의 가장자리까지 검게 드러났다. 나는 일지에 그 높이를 적었다. 약속은 지켜졌다.
그리고 손으로 적힌 그 시각이 되었을 때, 물은 한 번 더 물러갔다.
문장은 거기서 끊겨 있다. 나는 다음 글자를 적으려 펜을 들었으나, 손끝에서 무언가가 펜을 거부했다. 못 박힌 표를 만졌을 때의 그 냉기와 같은 종류였다. 그러나 잉크는 이어졌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글자들이 — 후세를 위해 — 천천히 적혀 내려갔다.
██ ████ █ ███████.그 순간, 천천히 돌던 등명기의 태엽이 한 번 — 아주 잠깐 — 멈칫했다. 그것뿐이었고, 이내 빛은 다시 십이 초의 호를 그리며 돌아 나갔다. 바람은 없었다. 갯벌은 여전히, 인쇄된 어느 표도 허락하지 않는 깊이까지 물러나 있었다.
나는 일지의 여백에 시각을 정확히 적어 넣었다. 분명 낡은 톱니가 한 번 어긋난 것이리라 — 다섯 달을 쉬지 않고 돌았으니, 태엽도 한 번쯤은 숨을 고를 만하지 않은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등명기는 내 등 뒤에서 돌고 있다. 놋쇠 받침의 라틴어 옆에서, 빛은 십이 초마다 검은 물을 한 번씩 쓸고 지나간다.
나는 받침의 익숙한 결을 바라본다. 다시 한 번 멈칫하지 않을까 — 그러나 태엽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