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는 『헤이케 이야기』(13세기)에 전하는 정체 모를 괴물로, 원숭이의 머리에 너구리의 몸, 호랑이의 다리, 뱀의 꼬리를 지녔다고 한다. 밤이면 호랑지빠귀 같은 소리로 울었고, 그 울음이 들리는 곳에는 흉사와 병이 따랐다. 헤이안 말기, 검은 구름과 함께 궁궐을 덮쳐 고노에 천황을 병들게 하자 미나모토노 요리마사가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다.
누에의 공포는 한 짐승으로 이름 붙일 수 없다는 데 있다. 어느 부분도 온전한 한 생물이 아니어서, 무엇이 왔는지를 끝내 규정하지 못한 채 흉조만 남는다. 정체가 봉인된 채 징후만 읽히는 이 구조는, 관측이 대상을 확정하지 못하는 우리 세계관의 결과 맞닿는다.